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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서기
06/03/19  

지난 주말 친구의 생일을 맞아 요즘 뜨는 동네인 성수동 명소라는 돼지갈비집에 가기로 했다. 한 친구가 오후 5시에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대기를 시작했고 생일 주인공과 나는 다른 일정을 마치고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식당 앞에 도착하였다. 허름한 간판에 특별할 것 없는 그냥 흔한 동네 고깃집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소문대로 식당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이 식당이 유명해지면서 주변에 우우죽순 늘어난 고깃집들도 하나같이 장사가 꽤 잘 되는 듯 보였다.

 

우리는 대략 두 시간 대기를 마치고 오후 7시가 넘어 식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자리에 앉으니 순식간에 기본 상차림이 차려지고 고기를 주문하고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불과 3-40분도 채 걸리지도 않았다. 무슨 공장처럼 뚝딱뚝딱 순식간에 식사를 마치고 나니 두 시간이 넘는 대기 시간에 비해 뭔가 좀 허무한 느낌마저 들었다. 식구들과 즐겨 찾는 우리동네 24시간 돼지갈비 집보다 훌륭한 것이라고는 고기 가격이 1인분에 13000원으로 시세보다 저렴한 편이라는 것 정도였다. 친구가 먼저 도착해서 줄을 서 주었기에 망정이지 고생하는 것에 비해 의아한 맛이었고 한번의 경험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 세 곳 중 한 곳은 망해 나간다는데 잘 되는 집은 또 이렇게 문정성시를 이룬다. 소문난 맛집이라고 일부러 찾아갔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집들도 적지 않은데 신기하게도 되는 집은 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찾아간 유명 핫도그 집은 한 시간 대기 끝에 겨우 핫도그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대기 시간 20분이 넘어섰을 때쯤 ‘내가 도대체 여기서 뭐하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지만 지금까지 기다린 시간을 생각하면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는 이와 유사한 일이 매일 벌어진다고 한다. 유명 강사진을 둔 대형 학원이 오전 7시에 문을 열면 학부모들은 순서대로 자리 배치표에 자녀의 이름을 써넣고 대기를 한다고 한다.  수백 명씩 모이는 유명 강의들은 선착순 자리 배정이기 때문에 좋은 자리를 맡으려면 새벽 5시부터 대기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시간 후면 100여 명이 대기를 하고 있다고 하니 기사 거리로 다룰 만한 일이구나 싶었다. 강남 학부모들의 "자리 전쟁"은 유명 강사의 수업이 있을 때마다 반복된다고 하는데 그 기사에서 말하길 학부모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한 학원의 마케팅이라는 분석이다. 새벽부터 줄이 길게 늘어선 모습을 보면 대부분의 부모들이 불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내 자식을 위한 일이 아니라면 과연 그렇게 새벽부터 줄을 설 수 있을까? 자식들도 부모가 그리 해주지 않는다면 몇 시간씩 대기했다가 학원에 들어간다는 것이 가당하기나 한 걸까? 개인적으로 나는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은 질색하는 편이다.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을까마는 많은 사람들이 뚜렷한 목적이 있을 경우 어쩔 수 없이 줄을 선다. 미국에서 손꼽는 줄서기 대표적인 예는 역시 DMV (자동차 관리국), 추수감사절 다음날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여름 방학에 디즈니랜드 정도가 아닌가 싶다. 나의 경우 미국에 사는 25년동안 단 한번도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에 줄을 선 적이 없을 정도로 나는 줄 서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결혼 후 남편이 여러 번 시도하였지만 내게 몇 번 거절을 당하더니 언젠가부터는 블랙프라이데이 새벽이면 말도 없이 혼자 사라지곤 했다.

 

이런 나도 수험생 부모가 되면 어느 학원 앞에 새벽부터 줄을 서게 될까? 밥 한끼 먹겠다고 한두 시간도 대기를 하는데 자식 위해서 이정도도 못할까…... 하면서?  겪어보지 못한 앞으로의 일이라 함부로 확신하거나 장담할 순 없지만 나는 아마도 줄 서서 핫도그는 사먹을 망정 아이들 학원 자리 배정을 위해 줄을 서진 않을 것 같다. 그냥 학원 줄서기는 맛집 줄서기보다 그 목적 의식이 무의미하고 결과 또한 허무할 것 같기 때문이다. 새벽 5시부터 줄을 서 내 아이를 명당 자리에 앉혔는데 그 아이가 강의는 뒷전이고 딴짓이라도 하면 그 배신감은 두 시간 기다림 끝에 먹은 돼지갈비 맛이 그저 그런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게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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