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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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04/23/18  |  조회:112  

으시시한 스릴러 영화에서 나올 법한 먹구름 낀 하늘이 며칠째 계속 된다매일매일 파란 하늘을 자랑하는 캘리포니아에 살 때는 어쩌다가 구름 낀 회색 하늘이 그리도 반갑고 비라도 내리면 손님이 온 듯 설레었는데 어쩐지 고국에서 맞는 연이은 비는 내 마음을 살짝 울적하게만들고 있다.

 

나는 이번에 귀국하면서 신기하게도 내가 이십여 년 전 떠나왔던 어릴 적 옛 동네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 여러 가지로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내 아이들이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운동장을뛰놀며 내 후배가 된다는 사실도 즐거웠고 어릴 적 거닐던 골목 골목을 다시 걸을 생각에 가슴이 콩딱콩딱하기도 했다.

 

그런데 참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내가 어릴 적엔 초등학생 혼자도 은행에 들어가서 통장을만들 수 있었건만 성인이되어 다시 돌아왔지만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미국 은행은 여권이나 운전면허증만으로도 오픈이 가능한데 비해 한국은 본인 실명으로 된 신분증및 핸드폰공인인증서 발급 등이 필수 사항이다대포통장 문제가 터지며 본인 확인 여부나실명 확인이 지나칠 정도로 복잡해졌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대한민국 국적 소지자가 아님에서 비롯되는 복잡한 추가 절차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재외국인에 대한 법률이 워낙 애매모호한 것들이 많아서 동사무소학교은행통신 업체 등에서 일 처리를 할 때마다 한 번에 해결되는 일이 없었다국민이 아니라서 안 된다거나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고 그나마 포기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기다리고 요청해야 겨우 이곳 저곳을 돌아 돌아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보름 동안 꼬박 매달리고도 아직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 넘어 산처럼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

 

국민이 아니어서 겪어야 하는 번거로움이야 재외국민으로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해당처에서 그런 나를 받아주고 도와주는 자세를 보며 더욱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그들은 모두 연신 나를 고객님선생님이라 부르며 극존칭어를 사용했지만 어쩐지 그들에게는 진심이나 영혼이 없었다도와주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고 귀찮은 케이스에 잘 못 걸렸구나 싶은표정으로 심드렁하게 응대하고 있었다같은 공간에 있는 다른 공무원들이나 직원들도 애써안 들리는 척 일부러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꺼리며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물론 그중에는친절하고 성실하게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모든 것이 간절했던 나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눈빛이 냉담했고 결국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남들은 몇 분 걸려서 처리할 일들을 나는 하루종일 매달려 겨우겨우 해결해야만 했다.

 

미국은 워낙 이민자가 많다 보니 이민자에 대한 법률이 확실해서 혼란을 야기하는 일이 드물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여러 분야에 정확한 법규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보니 꽤나 복잡하고불편한 절차들을 겪는 일이 불가피하다미국에서도 늘 이민자로 살아야 했는데 모국에 돌아와 재외국인으로 분리되어 또 다시 이방인으로 살아야 한다니 조금은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앞으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해야 할 지 모르는 수많은 이들을 위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재외국인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이 한시라도 빨리 정착되기를 간절히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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