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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
06/10/19  

나에게는 구내식당 급식에 대한 로망이 있다. 요즘 한국 초중고교 학생들은 모두 급식을 먹는데 애석하게도 나는 도시락 세대이고 어쩌다보니 구내식당이 있는 직장에서 한 번도 일해보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그렇게 구내식당은 호텔 뷔페나 그럴듯한 레스토랑보다 나를 더 설레이게 만든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잠시 방송국에서 인턴으로 일을 했었는데 나는 그 구내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을 참 좋아했었다. 그때 그 구내식당은 공교롭게도 한인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부부가 모두 무뚝뚝하긴 했지만 내가 인사를 하면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식당은 햄버거, 핏자, 샌드위치 등 기본 메뉴는 늘 있고 매일 그날의 메뉴가 바뀌는 시스템이었다. 한국 구내식당하고 스타일은 다르지만 나는 그 식당에서 만들어 주는 양상추가 가득 들어간 홈메이드 스타일의 버거도 좋아했고 식빵에 치즈만 넣고 버터에 구워주는 그릴 치즈 샌드위치도 좋아했었다. 

 

구내식당을 좋아하다 보니 병원 구내식당도 좋아하는데 네 번의 출산을 하러 갈 때마다 아기를 만나는 것 다음으로 기대된 것은 부끄럽지만 병원에서 먹는 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레이비 소스가 뿌려진 다소 퍽퍽한 치킨이나 간이 없는 푹 익어버린 당근과 브로컬리가 그렇게 맛있었던 건 출산 후 허기 때문인지 기분 탓인지 모르겠다.  그저 남김없이 맛있게 접시를 비웠던 기억만 있다.

 

한국에 와서는 무슨 복인지 일주일에 한두 번은 송파구청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일을 하게 되었다. 한 끼에 할인가 3300원짜리 식사가 어찌나 훌륭한지 단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다. 한국식 급식 시스템을 제대로 누려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식권을 내고 식판과 식기를 챙기고 밥과 국 그리고 반찬들을 먹을 만큼 퍼가는 방식이다. 처음 급식 대열에 끼어 식판을 손에 쥐었을 때의 희열은 꽤나 짜릿한 것이었다.

 

오늘의 급식 메뉴는 부대찌개에 생선까스, 단호박 샐러드, 꽈리고추찜과 깍두기였는데 부대찌개가 내 입맛에 다소 느끼했던 것을 빼고는 모두 훌륭했다. 깍두기는 어찌나 아삭아삭하고 맛깔스럽던지 한 번 더 리필을 해야만 했다. 언젠가 돈까스와 함께 나왔던 총각김치는 또 어찌나 맛있던지 돈을 내고 따로 구매를 하고 싶었을 정도였다. 평생 총각김치만큼은 친정 엄마가 만들어주시는 게 베스트라고 믿어온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해야 할까......   요즘같이 먹거리가 차고 넘쳐 광고인지 제대로된 후기인지 모를 추천을 보고 찾아가 비싼 돈을 주고도 쓰레기를 먹게 되는 경우가 빈번한 세상에 구내 식당 급식 정도면 양호하다 못해 훌륭하다고 평하고 싶다.

 

나는 여전히 구내식당 급식을 좋아한다. 먹는 것을 좋아해서 맛집도 많이 찾아 다녀 봤고 요리 잘하는 엄마를 둔 덕분에 맛있는 것도 실컷 먹으며 자랐지만 여전히 구내 식당 급식 줄에 서있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매일 바뀌는 메뉴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까 오고 가는 사람 구경이 즐거워서일까…. 구내식당 급식을 먹을 수 있는 현재의 내 삶을 더없이 찬양한다. 영어로는 Cherish라는 단어가 딱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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