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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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녀오겠습니다
04/23/18  

남편 직장 때문에 이십여 년의 미국 이민생활을 접고 다시 모국으로 귀국한다고 했을 때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만류했다만류의 이유들은 다양했는데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했던 것은 한국 교육의 실태와 학교의 붕괴에 대한 것이었다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아이들이 방과 후 학원 버스에 실려다니며 사교육을 받다가 해가 지면 집에 돌아온다는 소문은 고국을 방문할 때마다 나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저녁 7시 반은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밤 9시엔 고학년들이밤 11 12시에는 중고등학생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게 비일비재한 게 현실이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카더라 통신은 더욱 심각한 수준이었다한 아이 때문에 수업에 방해가 되거나 진도가 늦어지면 반 엄마들이 해당 아이 엄마에게 연락을 해서 집에서  지도해서 수업에 지장 없도록 하라고 압력을 행사한다고 했다같은 반 학부모 단체 채팅 그룹에서는 온갖학교와 교사들에 대한 소문들이 판을 치고 그 그룹에 속하지 못하면 엄마뿐 아니라 아이까지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고도 했다.

 

워낙 괴상한 소문을 많이 들은 터라 걱정스러운 마음부터 들었다혹 내 아이가 아이들 사이에서 왕따라도 당하지 않을까짧은 한국어 실력으로 교사 말을 잘못 이해해서  밑보이지는않을까달라진 문화 차이로 충격을 받는 것은 아닐까급식이나 거리 음식을 잘못 먹고 무더위에 식중독이라도 걸리면 어쩌지등하교 길에 길을 잃으면 어쩌지왕따학원폭력월권치맛바람무너지는 교권뉴스와 소문을 통해 들려오는 웃어넘길 수 없는 키워드들이끊임 없이 머릿속을 어지럽혀 왔다

 

개학 날이 다가오자 점점 더 걱정이 몰려 왔고 결국에는 개학 직전에 초등학교 자녀를 둔 한국 친구 입곱 명에게 연락해서 학교 준비물과 시간표실내화학교 복장 등 이모저모를 물었고아이들과 손을 잡고 마트에 가서 실내화연필지우개필통 등을 같이 고르고 구매하였다학교 가기 준비 체크 리스크를 만들고 집에서 학교까지학교에서 집까지 오는 길을 몇 번씩 아이들과 같이 걷고 또 걸었다주변에 같은 학교에 다니는 지인이 없어 아쉬워 하던 중 마침 층간 소음을 항의하려고 연락한 아래층 이웃과 인사를 하게 되었고 마침 둘째 아이가 우리큰 아이와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층간 소음 건을 사죄도 할 겸 요즘대세라는 백화점 빵을 사갖고 찾아가 학교에 대한 여러 가지 사전 조사 및 귀한 정보들을 입수할 수 있었다학원학습지간단한 준비물선생님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이 이어졌고 사전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결론은 무조건 ‘4학년 1반만 아니면 된다’ 였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학교 등하교 동선학교조사입학 원서 제출등교 준비물아이들과의사전답사 및 교육체크리스트 확인마치 과거를 치르러 떠나는 선비처럼수학여행을 준비하는 학생처럼첫 면접을 준비하는 졸업생처럼 꼼꼼하고 자세히 그리고 착실히 준비했다.

 

동이 트기 전에 눈이 떠졌고 계획대로 일사분란하게 일어나 등교 준비를 하였다떨리지만 당당하게낯설지만 여유있게 그렇게 우리는 교문에 들어섰다두 아이의 손에 든 실내화 주머니가 박자 맞춘 듯 동시에 움직였고 우리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결의에 차 있었다반 배정을 받기 위해 교무실 문을 열었고 담당직원이 기다렸다는듯이 반 배정표를 내밀며 말했다.

“ 4학년 1반이요.”

 

4학년 1반입니다.” “4학년 1반입니다.” “4학년 1반입니다.

빙빙빙 머릿속을 맴도는 “4학년 1반입니다”라는 말이 멈춘 건 내 발이 4학년 1반 교실 앞에멈췄을 때였다도대체 왜 그 많은 반 중에 1반인 걸까? #2반은안되겠니 #꿈이었다면 #왜내게이런시련을 #차라리모르는게 #시간을지배하는자가되고싶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갈 때 “전학생이다!~” “와 영어 대박 잘 해!”“외국에서 왔나봐!” 호기심 가득한 얼굴에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정신을 차려 본다얼핏보이는 선생님의 모습은 과연 소문대로 깐깐해 보인다냉혈한 사감 선생을 떠올리는 외모에괜히 주눅이 든다.

 

아래층 소식통에 의하면 4학년 어느 반에 배정되어도 별 문제가 없는데 1반만은 안 된다는것이었다. 1학기 때 이미 한바탕 문제가 있어서 한 명이 전학을 갔고 아이들은 지나치게 명랑하고 명예 퇴직을 코 앞에 둔 담임선생님은 별 열정이 없어 전교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반이라고 했다.

 

선생님이 우리를 알아보기 전에 키가 제일 큰 남학생이 우리 아이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안녕앞으로 친하게 지내자!”하고 먼저 인사했다첫째가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네!”하고 대답한다. (한국어가 서툴러서 어른들에게 자꾸 “응” 하길래 존댓말을 속성으로가르쳤더니 아무한테나 !”한다.)

 

곧 이어 선생님이 다가와 미소를 머금고 우리를 맞아 주신다아이를 맨 앞 여학생 옆자리에배정해 주니 교실 뒤쪽에 모여있던 여학생들이 “꺄아~~!”하고 소리를 지른다엄마의 착각일지 모르지만 분명 나쁜 “까야~!” 아니었다아니 뭔가 기대감이 담긴 좋은 느낌의 꺄아~!”였다.

 

미리 악수를 청해 준 같은 반 아이미소로 맞아 준 담임 선생님, “꺄아~!”로 반겨 준 여학생들,우리 아이와 이름이 같다면서 깡충깡충 뛰며 흥분하던 아이 덕분에 생각보다 마음이 편해졌다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기다리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초조함은 어쩔 수없었다인생의 묘미는 반전이라고 하더니 하필 4학년 1반이라니...… 싶었는데 반전은 아이들이 도착하고 다시 시작되었다.

“엄마나 친구랑 학교에서 더 놀다와도 괜찮아?” 개학 첫날 벌써 친구를 만들고 집에 오자마자 다시 학교에 가겠다는 첫째.

“엄마친구가 나보고 귀엽대.” 라고 신나서 자랑하는 둘째.

“엄마선생님이 내가 점심 제일 많이 먹었대.”라며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떠드는 셋째.

“미 노 푸푸” 라며 기저귀 차고 누나 책가방 메고 왔다 갔다 하며 껴 보겠다는 막내.

 

그 동안의 기우는 선거 끝난 뒤 철거 안 된 포스터처럼 씁쓸한 걱정이었음을 깨닫는다물론그 걱정 근심 덕분에 미리부터 준비하였고 그로 인해 모든 게 더 좋은 방향으로 풀렸을지 모르지만 나의 편견과 노파심을 훌륭하게 부서준 4학년 1반 아이들과 선생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그리고 매일 아침 빨리 학교에 가고 싶어서 안달하는 나의 아이들을 끝까지 지켜보며 응원하고자 한다.  잘했어그리고 수고했어 내 후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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