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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 낫 한(Thích Nhất Hạnh)
06/17/19  

스님과의 인연은 2004년 어느 봄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디오 방송국에 근무하던 당시 스님과 인터뷰하기로 했다는 동료 방송 진행자를 따라가서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에스콘디도 녹야원(鹿野苑, Deer Park Monastery)의 그리 크지 않은 방에 그와 마주 보고 앉았다. 그가 벽을 뒤로 하고 방문을 향해 중앙에 앉고 다른 스님 둘이 오른쪽과 왼쪽에 앉아 있었다.

 

주로 우리가 묻고 스님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스님이 어떤 말씀을 했는지 자세한 기억은 없으나 다행스럽게도 기록을 남겨 두었기에 그날을 세세히 떠올릴 수 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초지일관 평화로운 세상 만들기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온 그의 삶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해 온 세계와 인류, 우주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기록에 의존하지 않고도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까맣고 주름이 많은 얼굴 속에서 반짝이는 그의 두 눈이다. 사색의 깊이가 느껴지는 눈이었다. 무엇보다도 누구나 알기 쉽게 말하는 그를 보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그와의 대화 속에서 만들어진 따스한 기운이 봄바람에 실려 오는 꽃향기와 어울려 방안의 모든 이들에게 엷은 미소를 짓게 했었다.

 

이렇게 시작한 인연은 2006년 9월, 녹야원에서 4박 5일의 피정(避靜, Retreat)으로 이어졌다. 피정의 대부분은 수행자가 명상과 호흡을 스스로 즐기도록 짜여 있었다. 수료식 날 Giant Soul of the Heart라는 Dharma Name을 받았다. 피정을 마친 후 보름쯤 지나서 스님과 두 번째 만났다. 역시 에스콘디도 녹야원에서였다. 이번에는 단독 인터뷰가 아니라 대중들과 함께 걸으며 명상하고 그가 2시간 정도 대중들에게 설법하는 시간에 참여했다. 나의 기록에 의하면 그의 설법의 작은 가지는 셋이요, 큰 내용은 하나였다.

 

프랑스에 그가 세운 Plum Village에 관한 이야기, 세계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인류에 대한 문제, 그리고 우리들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세계 평화도 우리들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며, 정성스럽게 호흡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묵상하다보면 우리들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가득 차게 되며, 대지에도 평화와 기쁨을 심게 된다. 대지는 우리의 어머니이고 우리는 대지의 자녀들이다. 우리는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고 우리는 대지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들 모두가 진지한 마음으로 밝고 기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생활하다보면 이 세상에는 저절로 평화가 올 것이다.’로 귀결됐다. 아주 쉽고 간단한 이야기였다.

 

스님과 두 번의 만남 이후로 워킹 메디테이션을 실생활에 적용했다. 빠르게 움직이던 발놀림을 천천히 했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정성을 다해 걸었다.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거나 무릎을 꿇고 하던 기도를 걸으며 했다. 예를 들면 한 걸음 옮기며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다른 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합격’, 하는 식으로 주변 사람들이 염원하는 바가 달성되도록 기원하며 걸었다. 산길을 걸으면서도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호흡과 워킹 메디테이션을 함께 병행했다. 그 결과 내가 걸으며 기원했던 사람들의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을 무수히 경험했다. 가족들을 비롯해 함께 일하는 타운뉴스 직원들의 자녀들, 친구나 친지들, 모두 뜻하는 바가 이루어졌다. 워킹 메디테이션이야말로 큰 명상법이며 기도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님과의 첫 만남 이후 15년이 지난 2019년 봄, 스님의 책,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를 택배로 받았다. SNS에 스님의 말씀을 인용한 친구의 글을 보고 스님과의 인연을 얘기했더니 친구가 보내주었다. 그동안 스님이 써놓았던 글들을 주제와 시기 별로 모아서 엮어 놓은 것으로 일대기라고도 할 수 있으며, 자서전적 성격을 띤 글 모음집이다. 책은 ‘베트남에서의 삶’으로 시작해 '전쟁과 망명’으로 이어지고 ‘꽃피는 자두마을’에서는 프랑스에서의 삶을 밝히고 있으며, '세상의 고향집에서’를 거쳐 ‘나는 이르렀다’에서 끝맺는다.

 

스님은 열여섯 살에 출가하여 전쟁과 오랜 망명생활을 겪었다. 수행의 길을 걸었으며, 스스로 변화하고 치유하는 94년간의 여정을 접고 2018년 12월 베트남으로 돌아와 ‘투 하에우’ 사찰에 머물고 있다. 수행에 대해 근사한 강의를 하고, 일반 대중을 위한 수행 도장을 프랑스와 미국 등지에 마련했지만 스님은 ‘진정한 내 집’을 찾지 못해 헤매 다녔다.

 

스님은 “나는 이르렀습니다. 나는 집에 있습니다. 한 번 숨 쉬고 한 발짝 걸으면 단 몇 초 만에 집에 이를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명상과 호흡법을 통해 언제나 내 집에 도달할 수 있음을 힘주어 말했으나 범부의 눈에는 이제 비로소 스님은 마음과 육신을 모두 편안히 고향집에 뉘일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망명시절 꾸던 꿈속에 자주 나타났던 베트남의 절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아무리 명상과 호흡법을 통해 언제나 어디서나 내 집에 도달할 수 있다고 외쳐도 마음으로 가는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몸과 마음을 함께 뉘일 때야 비로소 도달한 것이다.

 

스님과의 인연이 친구가 보내준 책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책을 읽으며 스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시간을 갖게 되었음에 감사한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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