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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
06/24/19  

내년 봄이면 중학생이 되는 큰아들이 얼마 전 소그룹 성교육을 받았다. 중학교에 가면 유튜브, 무분별한 동영상 그리고 같은 또래의 성박사 (성에 해박한 아이)를 통해 잘못된 성교육을 받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해서 미리 제대로 교육을 받았으면 싶었다. 게다가 얼마 전 아들이 아기는 어떻게 생기냐고 진지하게 물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학교 성교육 시간에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된다고 배웠는데 어떻게 만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고 이쯤 되면 얼렁뚱땅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어떤 학부모로부터 학교에서 하는 형식적인 성교육과 다르게 소그룹 단위의 출장 교육을 하는 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예약을 서둘렀다. 4월에 연락했는데 주말은 이미 8월까지 꽉 차 있다고 하여 5월 말 주중으로 날짜를 잡았다. 평소 친분이 있는 엄마 둘에게 같이 하겠냐고 묻자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였고 몇 명이 더 늘어나서 우리 아이까지 총 7명이 함께 교육을 받게 되었다.  

 

성교육 강사가 정해진 장소로 방문하여 아이들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성교육을 실시하게 되는데 강사는 이십대 중반의 젊은 남성이었다. 아이들이 교육을 받는 동안에 부모들은 아이들과 다른 장소에서 대기하고 아이들 교육이 끝나면 부모들만 따로 브리핑을 받는 형식이었다. 아이들은 제 나이에 맞게 성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과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교육을 받는데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던 다양한 고민 상담까지 자연스레 이루어진 모양이었다. 서너 시간의 과정을 끝내고 나니 아이에게나 부모에게나 꽤나 유익한 시간이 된 것은 확실한데 학교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을 제공했더라면 따로 돈을 들이고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물론 우리 어릴 때는 성교육이라는 것이 따로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일체 성교육이 없었기 때문에 발육이 빨랐던 친구들은 늘 아무렇지 않게 놀림의 대상이 되었고 우리 모두는 그것이 성희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다가 여중에 진학했는데 중1때 담임 선생님이 어느 날 갑자기 속옷 검사를 하시며 중학생이 되었으니 반드시 브라를 착용해야 한다고 하셨다. 내가 가슴이 없는데 왜 브라를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이 나를 한번 째려보시며 가장 작은 사이즈로 사 입으라 하셨다. 그 이후에도 여중에 다니는 내내 우리는 거들 착용 검사를 비롯한 각종 속옷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가정 선생님은 틈만 나면 이 세상 남자는 모두 늑대이며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아는 남자"라고 강조하셨다. 물론 자세한 부가 설명은 없었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치마를 들추는 장난인 아이스케키는 더 이상 가벼운 놀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유치원생도 알고 있다.  모두가 불편하고 부끄러워 쉬쉬했던 성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은 자유롭게 나눌 수 있게 되었고 90년대 후반부터 성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과도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매일같이 올라오는 뉴스에 성범죄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올해 내내 떠들썩했던 성 관련 범죄 사건들은 유명인이 연루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큰 충격을 안겨주긴 했지만 한편으로 그리 놀랍지 만은 않았다. 그저 터질 게 터졌다고 해야 할까...... 우리가 모르지 않았던 일부 남성들의 왜곡된 성의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곳곳에서 이런 유형의 남자들을 만나고 묵인했으며 어쩌면 내 일이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지나쳐 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아들 셋을 둔 엄마로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미흡한 성교육과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누구든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로서 크나큰 책임과 사명감을 느낀다. 앞다투어 터져 나오는 각종 유명인들의 성 스캔들을 심판하기 이전에 내 자녀들이 자신의 몸과 생명에 대해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6학년 아들은 이번 성교육을 통해 마침내 어떻게 아기가 생기는지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꽤나 뿌듯한 모양이다. 그날 저녁, 오랜 궁금증에서 벗어난 듯 아이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고 여유 있어 보였다. 그리고 한층 자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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