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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유전인가
07/08/19  

나는 운동을 못한다. 운동을 못한다는 사실을 처음 안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선생님이 육상 대회를 앞두고 달리기 잘 하는 애들을 선별 하셨고 그 당시 내가 선택 된 것인지 자원한 것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몇 명 중에 한 명으로 선생님 앞에서 달리기 시범을 보여야 했다. 그때 나는 난생 처음으로 내가 잘 뛰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머리는 앞으로 나가는데 발은 저 뒤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이랄까 마음처럼 다리가 움직여주지 않았다. 식구들이 워낙 운동을 좋아하고 잘 하는 편이여서 전혀 의심하지 않았건만 불행히도 나는 운동만큼은 확실히 소질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운동을 못해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거나 난감했던 적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분명 불편하거나 아쉬운 순간들은 있었다. 고등학교 체육 시간에 배구나 농구같은 팀 스포츠를 하게 되면 공을 놓치거나 서브에 실패하는 등 번번히 팀에 민폐를 끼쳐 몹시 미안했던 것이 마음에 걸리다. 그리고 배낭여행 중 베르사유궁에 갔을 때 자전거를 탈 줄 몰라 자전거 투어를 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런데 이것도 유전인가……우리집 아이들도 하나같이 운동 신경이 없는 편이다.  첫째가 남자 애라 나도 사커맘에 대한 로망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유아 체육 교실, 어린이 농구, 축구 교실도 등록해서 보내 보고 혹시라도 스포츠 팀에라도 들어가면 치맛바람 좀 날려가며 열심히 지지해야지 하며 김칫국부터 마셔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운동에는 영 흥미가 없었고 잘 하지 못하니 재미도 없고 그래서 열심히 안하니 더 못하고의 악순환이었다. 특히 팀스포츠를 하게 되면 본인이 유난히 못하니 은근 스트레스를 받는 눈치였다. 언제부턴가 “왜 나는 운동을 못하는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운동에 있어서 그나마 셋째가 중간은 하는 편인데 언젠가 태권도장 줄넘기 대회에서 1등했을 때 나는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이라도 따온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기뻐했다. 내 스스로가 운동에 소질이 없고 아이들에게도 큰 기대가 없기 때문인지 그 정도만 해줘도 어찌나 신통방통한지  바라 보는 것만으로 초흥분 상태가 된다. 우리 아이들이 나와 달리 운동에 소질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정말 최강의 팔불출 엄마가 되어 있는 유난 없는 유난을 다 떨고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엔 뭐든 일찍 시작해야 성공한다고 운동 또한 조기교육 열풍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혹시라도 우리 아이가 공부와는 연이 없으면 어쩌나 싶어 보험 들어 놓듯 예체능 쪽도 슬쩍 발을 걸쳐둬야 한다고 한다. 작년에 한국에서 만났던 한 학부모는 아이가 만 5세일 때 아이에게 공부, 운동, 음악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고 그때 아이가 운동을 골라 그때부터 테니스 강습을 시작했다고 한다.  연고도 없는 우리 동네로 이사 온 이유도 테니스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왔던 것이었고 평소에는 대학교에서, 방학 때는 해외로 레슨을 받으러 가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1학년을 채 마치기도 전에 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이렇게 열정적인 학부모들을 만날 때마다  솔직히 아주 조금은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깡총깡총 아슬아슬 줄넘기 하는 모습만 봐도 흐뭇하다.

 

우리 어머니도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운동회 달리기에서 꼴찌에서 두 번째 하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하셨다고 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운동뿐 아니라 딱히 아주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거저 키웠다 싶을 만큼 수월한 자식이었다고도 하시니 그나마 다행이 아닌가 싶다. 하필이면 나를 닮아 아이들이 운동에 소질이 없는 것은 안타깝고 미안하지만 그래도 나는 나름 잘 살아왔으니 아이들에게도 할 말은 있다. 얼마 전 운동에 소질이 없다며 의기소침해진 큰 아들에게 말했다. “운동을 못해도 즐길 줄 알면 된 거야. 못해도 네가 재미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하지만 못해서 재미없다면 그래서 하기 싫다면 굳이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 그래도 괜찮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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