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막이
07/15/19  

7월 12일이 초복이었다. 24절기나 명절에 속하지 않지만 한국인들이 여름철에 잘 챙기는 날이 복날이다. 게다가 복날은 하루가 아니다. 초복, 중복, 말복, 3일이나 된다. 삼복은 중국 진나라에서 시작됐으며, 초복과 중복은 10일 간격이고, 말복은 절기에 따라 달라진다. 중복과 말복사이가 20일이 넘으면 월복(越伏) 이라고 하는데, 올해가 바로 월복인 관계로 다른 해보다 더위가 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초의 한국 백과사전 《지봉유설》에서는 복날을 "양기에 눌려 음기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날로 사람들이 더위에 지쳐 있을 때"라고 했다. 음기가 엎드려 있는 날이라 엎드릴 복(伏)자를 사용했는가 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최남선은 복날을 ‘서기제복(暑氣制伏)’이라고 하여 더위를 꺾는 날이라고 풀이했다.

 

우리 조상들의 세시풍습에 의하면 복날, 더위를 피해 바쁜 일손을 거두어들이고 잠시 쉬면서 보양식을 즐겨 먹었다. 특히 더위를 이기기 위해 더운 음식을 찾았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 그저 정신적인 것에 근거한 이론은 아니다 예부터 더울 때 뜨거운 것을 먹는 것에는 다 까닭이 있었다. 인체는 외부의 높은 기온 때문에 체온이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다른 계절보다 20~30퍼센트 이상 많은 피를 피부 근처로 보내게 된다. 따라서 위장을 비롯하여 여러 장기는 피가 모자라게 되고 몸 안의 온도가 떨어진다. 이렇게 되면 식욕이 저하되면서 만성피로가 몰려온다. 더군다나 덥다고 차가운 음식을 과다하게 섭취하게 되면 배나 장기가 더욱 차가워져 건강이 나빠진다. 그래서 따뜻한 음식을 먹고, 땀을 흘려 장기를 보호해주려는 것이다.

 

미국에 사는 우리는 여름 보양식으로 삼계탕을 즐겨 먹는다. 삼계탕이 이곳 한식당의 단골 메뉴로 자리 잡은 지는 오래되었다. 일본인, 중국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삼계탕 먹는 모습을 식당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요즈음은 타인종들도 자주 찾고 있다.

 

보양식 하면 추어탕도 빼놓을 수 없다. 미꾸라지를 구할 수 없어서인지 과거에는 이곳에서 접하기 힘든 음식이었으나 요즘에는 추어탕을 메뉴에 올린 식당들이 여기저기 생겨났다. 옛날 생각하고 잔뜩 기대했다가 정체 모를 맛에 실망하기도 하지만, 간혹 제대로 맛을 낸 추어탕을 만나기도 한다. 야채를 듬뿍 넣고 푹 끓인 추어탕 한 그릇은 더위에 지친 몸에 영양을 듬뿍 공급해 줄 것이다.

 

삼계탕보다 좀 더 특별한 보양식이 개장국, 즉 보신탕인데 요즘은 사철탕, 혹은 영양탕이라고도 한다. ‘복날의 복(伏)자가 사람 인(亻) 변에 개를 뜻하는 개 견(犬)자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개가 분명히 복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삼복은 중국 진나라에서 시작되었다. 복날 개고기를 먹는 풍습 역시 진나라에서 시작된 것으로 부족한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중국 사람들이나 한국 사람들이 복날 보신탕을 즐겨 먹었던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오행에서 개는 금(金)에 속하기 때문에, 금의 기운이 왕성한 개를 먹어 더위로 허해진 심신의 균형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보신탕이 전에는 계절에 상관없이 흔히 즐겨먹는 음식이었지만 요즈음은 드러내 놓고 먹기를 꺼리는 추세다. 특히, 미국에서 이것을 먹으려고 했다가는 신세를 망칠 수도 있다.

 

복날인 12일, 미국 영화배우 킴 베이싱어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만났다는 단신이 떴다. 킴베이싱어와 알렉 볼드윈이 함께 출연한 영화 ‘Get Away’를 수십 번 봤다. 큰 의미도 없고 그저 투견장에서 훔친 돈을 가로챈 남녀가 도망치는 이야기로 별다른 내용이 없지만 두 남녀의 러브신과 쫒고 쫒기는 추격신 등에 흠뻑 빠졌었다. 그 영화촬영을 하면서 알렉 볼드윈과 가까워졌고 결혼까지 했다. 왜 그녀가 이재명 지사를 방문했을까.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간다. 이재명 지사가 시장을 지냈던 성남시의 모란 시장은 개고기 축제를 할 정도로 개고기 시장이 유명했다. 성남시장 재직 시절 이 지사는 성남 모란 가축시장 상인회와 환경개선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점포들의 업종 전환을 유도하면서 개 도축 시설 21곳을 자진 철거하도록 했다. 동물 애호가인 킴 베이싱어가 이재명 지사의 이런 노력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방문했다는 그저 그런 뉴스였다. 킴 베이싱어는 “개 도살장 폐쇄는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동물보호법이 아무리 잘 되어 있다 해도 실행하지 않으면 무용지물과 같기 때문에 집행하는데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동물애호를 위한 각종 시위 등으로 12번 경찰에 체포되고 4번 감옥에 갔었다.

 

킴 베이싱어가 남의 나라 식생활 문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내비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듯하나 시대적 추세가 그러하니 굳이 우리 문화라고 우기면서 먹을 필요도 없을 듯하다. 하물며 미국에 사는 우리야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인삼 대신에 전복이 들어간 닭백숙으로 올 여름 더위 막이를 시작했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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