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 일찍 여는 아침
07/15/19  

벌써 20년쯤 전인가 보다. 대학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여름 방학에 한국으로 한두 달 놀러 왔었다. 한국 친구들은 미국에서 살다 온 친구라고 인사동, 경복궁, 민속촌, 맛있다는 한식집 등에 열심히 나를 데리고 가주었다. 외국인도 아니고 한국에서 나고 자랐는데 그래도 미국에서 온 친구라고 마음 써주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좀 웃기기도 하고 그랬다. 한 번은 친구가 동대문 야시장에 데려가 주었는데 두고두고 기억나는 아주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쇼핑은 해가 지고 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도매와 소매를 겸하고 있는 가게들인데다가 정찰제가 아니고 부르는게 값이다보니 재래시장처럼 흥정의 기술이 나름 필요했다. 그래봤자 우리같이 한두 벌 사는 사람이야 몇 천 원 차이겠지만 그래도 그걸 깍아보겠다고 열심히 발품을 팔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천지였다.  그 당시에는 온라인 쇼핑 같은 게 없던 시절이라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파들이 모였다. 정말 앞뒤로 꽉꽉 막힌 사람들 속에 휘말려 밤새 돌아다니다 보니 나중에는 기진맥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정작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그렇게 밤을 꼴딱 새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올라탄 첫 차였다. 아직 동녘에 해도 올라오지 않은 캄캄한 새벽이었는데 버스에 올라탔을 때 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버스 안에 있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그 시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이른 시간에 마치 전장에라도 나가는 듯 비장하기까지 한 표정으로 모두들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때 그 장면은 왠지 여러 번 반복해서 본 오래된 클래식 영화처럼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일찍 아침을 시작하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명절날 일찌감치 차례 지내러 가는 길이 그랬고 휴가철에 트래픽을 피하기 위해 새벽같이 출발하는 여행 길이 그랬다. 새벽녘의 고요함, 차갑지만 하루 중 가장 상쾌한 새벽의 공기와 이슬 머금은 땅 냄새를 알아버려서 남들보다 일찍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꼭두새벽부터 일어나는 일이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더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집 식구들은 아이들도 꽤나 얼리버드로 아침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물론 매일 밤 9시면 취침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기상 시간도 이른 것이지만. 요즘 만 아홉 살 딸은 평소보다 더 일찍인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하고 있다. 성당 첫 영성체반에서 주 4일 한 달간 새벽 미사 참례를 필수 사항으로 권고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5시 30분에 깨우니 벌떡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 앉았다.  세수하고 양치하라고 말한 후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와 잠시 누웠다. 5분쯤 지났는데 너무 조용해서 혹시나 싶어서 딸 방으로 가니 다시 누워서 자고 있다. "어머, 너 다시 자면 어떡해?" 그러니 "응? 엄마가 나 언제 깨웠어? 안 깨웠잖아." 그런다. 실랑이 할 시간이 없어 서두르라고 말하고 서둘러 보낸다. 

 

오늘로 새벽 미사 2주차였는데 생각보다 대견하게 잘 해내고 있다. 아직도 캄캄한 새벽, 딸이 어둠 속에서 손을 흔들며 나가는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어본다. 우리 딸도 나처럼 남보다 조금 일찍 여는 아침을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나저나 새벽미사는 아직도 3주가 남았다. 애 넷 엄마인 나를 대신해서 아이들 오고 가고 라이드를 책임지고 있는 나의 친구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그대들의 이른 아침을 찬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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