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소풍
04/23/18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유난히 선명한 하늘은 높고 푸르며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감기걸리기 딱 좋은 날씨이다이런 환절기를 우리 가족도 무사히 피해가지 못하고 하나 둘 시작된 콧물, 기침이 온 집안을 점령하고 말았다.  그래도 나는 습하고 끈적끈적한 한국의 무더위와 작별하는 것이 내심 즐겁고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걷고 있자면 괜히 설레고 기분이 좋다.하지만 사 남매 엄마의 가을은 결코 그저 감상적일 수만은 없다.

 

한국 집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되며 시댁으로 온 가족이 피난을 가게 되었고 세 살배기 막내를 데리고 세 아이들의 등ㆍ하교에 동행하며 각기 다른 하교, 방과후수업, 학습지, 학원 스케줄을 챙기는 일이 생각보다 정신 없었다. 그렇게 정신 없는 와중에 아이들은 학교에서 가을소풍을 가기 시작했다.  

 

서울랜드로 소풍을 가게 된 4학년인 큰 아이의 가정통신문은 이러했다.

 9/18(현장체험학습

-준비물:학급티도시락비닐봉지&음료수물티슈나 휴지간식 등

-멀미하는 사람은 멀미약 꼭 챙기기

-안전하게즐겁게사이좋게!

-아침에 늦지 않게 등교

-도착 시간은 3~3시 반

 

어릴 적 우리가 집으로 가져가던 지면으로된 가정통신문과 달리 요즘은 스마트폰에 앱을 다운로드하면 그때 그때 알림 메시지가 온다아이가 엄마에게 가정통신문을 전달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댈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고나 할까. 모든 엄마들은 꼼짝없이 아이들의 숙제,준비물, 교과 내용 등을 훤히 꿰고 있어야만 하고 준비물을 깜빡하면 영락없이 엄마의 과실이되어 버린다.

 

다시 소풍 이야기로 돌아가서, 첫째는 서울랜드에 도착하면 반 전체가 함께 이동하지 않고 6명씩 그룹을 짜서 흩어져서 다닌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그룹 친구들과 상의해서 점심은 친구들과 사 먹겠다고 했다.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점심 사 먹을 돈을 챙겨 보내고 간단한 간식만배낭에 넣어 주었는데 소풍에서 돌아온 아이가 친구들이 대부분 점심을 싸 왔다고 했다. 아이들끼리는 사 먹자고 상의했어도 엄마들은 챙겨 보내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모양인데나만 곧이곧대로 아이의 말을 따른 것이었다. 다행히 아이가 점심 한 끼 대충 떼운 것을 별로개의치 않아 했지만 엄마 마음은 괜히 미안해졌다.

한국에서 첫 소풍을 맞이한 아이들이 한창 들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어린 날도 추억해본다. 혹시라도 소풍날 비가 올까...… 늦잠을 자서 지각을 할까...… 가슴을 졸이느라 잠 못 이루던 소풍 전날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봄이나 가을 소풍 철이 되면 엄마는 소풍날 입으라며 새 옷을 잘 사 주셨는데 지금 앨범 속 소풍 사진을 보면 누가 봐도 한두 칫수 큰 옷을입고 밝게 웃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정작 노느라고 정신이 팔려서 엄마가 새벽부터 일어나서 싸 주신 김밥은 절반도 못 먹었고입맛대로 야무지게 챙겨 갔던 음료수, 과자, 캔디는 아껴 먹고 남겨 와서 두고두고 야금야금먹었던 기억이 난다.

 

버스 타고 가는 내내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고 모처럼 야외에서 친구들과 놀면 그 재미가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단체 사진 한 번 찍으려고 하면 선생님이 아이들 집합하고 자리 배치하고 앞을 보게 하는데 한참이 걸리기도 했다. 고생하며 찍었지만 지금도 소풍 때마다 찍은단체사진들을 보면 절로 웃음이 흘러 나온다.

 

오늘은 우리 둘째의 소풍 날이다. 아이는 며칠 전부터 잔뜩 신이 나 있다가 병아리처럼 샛노란 옷을 입고 머리는 양갈래로 묶고 활짝 웃으며 집을 나섰다.

 

“사랑하는 딸아, 엄마가 바빠서 미안김밥은 김밥천국에서 맛있게 만들어 줬어. 내년엔 엄마가 직접 만들어 줄게찬란한 오늘을 마음껏 즐기고 돌아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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