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집착하지 않는다
07/22/19  

세차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교차로에 멈춰 섰다. 교차로를 건너자마자 바로 우회전하면 세차장이다. 직진 신호가 켜졌다. 자전거 한 대가 앞에 가고 있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자전거를 먼저 가게하고 우회전할 생각이었다. 그때 자전거와 내 차 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차 한대가 쏜살같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우회전해서 세차장으로 들어갔다. 너무 놀랐다. 그 차를 따라 세차장으로 들어갔다. 내 차를 앞질러 세차장으로 들어간 차에서 운전자가 내리고 있었다. 큰소리를 질렀다. 아니 나도 모르게 큰소리가 나왔다.

 

상대방이 슬쩍 곁눈질로 나를 본다. 한국 사람이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접수를 받는 직원과 뭐라고 얘기하더니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사무실 밖 의자에 걸터앉는다. 눈이 마주칠까 하고 다시 한 번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다른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세차비를 지불했다.

 

밖으로 나오니 그는 스마트폰의 볼륨을 높이고 한국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었다. 소리가 너무 컸다. 가뜩이나 밉상인 사람이 더 밉게 보였다.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무례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음날 출근길이었다. Orangewood길을 만나면 우회전을 해야 했다. 우측 차선으로 변경하기 위해 방향 표시등을 켰다. 뒤에서는 트럭이 따라오고 있었다. 충분한 공간이 되어 차선을 변경해 트럭 앞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트럭이 내가 달려오던 차선으로 급히 차선을 바꾸더니 속력을 내어 기어이 다시 내 앞으로 끼어들었다. 아마 자기 앞으로 끼어든 것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그러려니 하고 가는데 트럭이 갑자기 속력을 줄였다. 보복 운전을 한다고 표시하는 듯했다. 우측 방향등을 켜니 그 트럭도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서 내 앞을 가로 막으며 서행하기 시작했다. 트럭의 운전자는 내 차가 자기 차 앞으로 끼어든 것에 대해 몹시 분노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드디어 우회전해야 할 교차로에 멈춰 섰다. 트럭이 왼쪽으로 비켜주면 우회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트럭은 내가 우회전 할 수 없게 오른쪽에 바짝 붙어 내 차를 가로막고 서있었다. 트럭은 신호등이 바뀌자 그제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표현의 형태만 다를 뿐 어제 내가 큰소리를 낸 것이나 오늘 트럭 운전자가 나의 운전을 방해한 것은 사실 같은 감정으로 인한 것이었다.

 

이런 감정은 비단 자동차 운전할 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내 의도대로 하지 않으면 화를 내고 마구 비난하고 있지 않은가. 상대가 한 행동에 대해 이해하려들지 않고 무조건 비난하고 맞서서 해결하려는 생각이 앞서고 있지나 않은지. 갑자기 내 앞으로 끼어든 차도 '세차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라고 이해하고 나면 아무 일도 아닌데 화를 내고 큰소리를 내지 않았던가. 세차장에서 만났던 그 남자도 내 큰소리를 듣지 못했을 리 없다. 어쩌면 내가 세차장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모르고 내 앞으로 끼어들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의 언쟁을 피하기 위해 시비를 따지는 것보다 입을 다물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오히려 그가 훌륭한 인품을 지닌 사람일 수도 있다.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속상해 하고 혼자 가슴 아파했던가. 상대방을 이해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얼마나 많이 속을 끓이고 분노했던가. 아들딸, 형제자매, 일가친척, 직장 동료, 수많은 친지들의 언행을 내 멋대로 해석하고 판단하지 않았던가. 나의 안위와 무탈을 최우선하며 살다보니 타인의 행동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도(道)를 깨닫겠다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공들여 왔던가. 그러나 그 공력(功力)이 헛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일상에서 필연, 우연 등으로 만나고 스쳐가는 모든 이들을 바르게 이해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도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지난 18일 입적한 비구니계의 선구자이며 원로, 태허당 광우스님의 임종계가 떠오른다. “떠나는 바람은 집착하지 않는다. 그저 왔다가 갈 뿐이다.”

 

언제가 떠날 세상, 하찮은 일에 분노하고 집착하지 말라는 스님의 가르침이 오늘은 더 큰 울림이 돼 내 마음을 채운다.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