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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구
07/22/19  

둘째와 셋째가 수족구에 걸렸다. 아이 넷을 키우는 동안 처음 겪는 일이었다. 집단 생활을 많이 하는 한국의 초등학생들이 전염병에 취약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정말 그런 모양이었다. 우리 아이들도 미국에서와 달리 외부 활동이 훨씬 많긴 하다. 학교 다녀오면 매일 방과후수업, 태권도, 피아노, 수영 등 밖에서 집단 활동을 하다 보니 한국에 온 이후로 유행하는 전염병에는 꼭 걸리는 것 같다.

 

수족구는 보통 5세 미만의 아이들이 잘 걸리는 병인데 불행 중 다행인 건지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들은 발열, 복통, 발진 등의 증상은 거의 없고 일상 생활에도 무리가 없는 컨디션이었다. 다만 전염성이 강한 병이다 보니 완치가 될 때까지 격리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학교는 물론 매일 다니는 학원들까지 모든 집단 활동이 중지되었다. 모든 스케줄도 조정되었다. 내 생일 맞이 시댁과의 저녁 식사 선약도 취소되었고 주일에 집으로 놀러 오기로 했던 친구네 가족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일단 우리집에서 가장 어린 미취학 아동 막내가 위험했다. 다행히 근처에 사시는 시부모님께서 흔쾌히 맡아주신다고 하여 막내를 서둘러 시댁으로 보냈다. 베게, 안고 자는 애착 인형, 갈아입을 옷들과 직접 고른 장난감들을 챙기다 보니 뭔가 짠한 느낌이 드는 것이 막내는 역시 다르긴 다른가 보다.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으며 꼬마 왕 노릇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막내는 아직 늘 눈에 밟힌다.

 

막내를 보내고 철저한 격리를 위해 병에 걸린 두 아이의 행동 반경을 좁히고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접촉을 제한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내가 할 일이 많아졌다. 학교도 안 가는 아이들 끼니를 방으로 따로 넣어 주고 물이며 간식이며 따로 시중을 들어야 했으며 화장실 불 켜고 칫솔에 치약을 짜주는 것까지 일일이 다 대신 해주었다. 주말에는 유난히 더 귀찮았지만 싫어하는 내색을 하면 아이가 혼자 해결하려 들까 봐 최대한 웃는 낯으로 성실히 임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다 엄마가 대신 해 주겠다는 데도 굳이 기를 쓰고 본인이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나라면 얼씨구나 싶어서 한 며칠 푹 쉬고 즐길 텐데 아이들은 하루 빨리 학교에 가고 싶어했고 자기 마음대로 집안을 활보하던 평소처럼 돌아가고 싶어했다.

 

하루 하루가 길게만 느껴졌는데 일주일을 꼬박 채운 뒤 수족구 완치 판정을 받았고 이제 드디어 격리 시스템이 해제되었다. 막내도 집으로 돌아오고 온가족이 한 식탁에서 밥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학교, 학원과 같은 전염병의 온상지로 되돌아갔다. 일상으로 돌아간 아이들의 얼굴엔 이내 화색이 돌았다.  집에 있는 며칠은 활동이 줄어서인지 삼시 세끼도 겨우겨우 먹었는데 일상으로 돌아오자마자 식욕도 부쩍 좋아진 듯했다. 나도 이제 아픈 아이들을 케어할 필요 없고 다른 아이들이 옮을까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어져 마음이 한껏 가벼워졌다.

 

그렇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싶었던 오늘, 미국에 사는 제일 친한 친구로부터 오랜만에 문자가 왔다. 나처럼 아이 넷을 키우는 엄마인데 늘 일이 바빠서 연락을 자주 못하고 최근에는 너무 뜸해서 마침 안부가 몹시 궁금하던 차였다. 일이 바빴다고 하면서 최근 6학년 큰 딸이 수족구에 걸려 정신이 없었다고 하는데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 위로해주었다. 

 

수족구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더니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과연 여름철 유행은 유행인가보다. 이런 유행은 좀 뒤쳐져도 좋겠다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인데 우리 아이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대열에 이름을 새기는구나.  아…… 부디 수족구를 마지막으로 올해의 전염병치레는 완전 끝난 것이길 바란다. 아이가 아프면 그 책임은 모두 엄마인 내 두 어깨에 짊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아픈 것이 가장 무섭다. 누가 뭐라 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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