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삐삐삐
08/12/19  

열대야는 야간의 최저 기온이 25℃ 이상인 밤을 일컫는다는데 며칠 전 입추가 지났지만 올여름 열대야는 아직도 계속 되는 기분이다. 에어컨을 향한 의존도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 아, 에어컨이 없는 여름은 이제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고보니 내가 어릴 적 요즘같이 몸이 끈적끈적해지고 쉽게 잠이 들지 않는 밤이 계속되면 늘 티브이에서 납량특집으로 스산한 기운이 도는 영화나 드라마 특집들이 방영되곤 하였다. 실제로 무서운 영상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등골이 오싹오싹해지며 공기가 서늘해지는 느낌마저 들어 멀찍이 던져두었던 이불도 다시 덮게 되는 그런 오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여러 가지 납량특집이 있었지만 그중 왕중의 왕은 역시 “전설의 고향”이 아닌가 싶다. 워낙 여러 번 재편성되어 다시 방영했었지만 뭐니뭐니해도 어릴 때 자는 척하며 실눈 뜨고 엄마 몰래 보던 클래식 방송들이 최고였다. 워낙 어렸을 때라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엄마의 불호령에도 불구하고 빼꼼히 도둑눈으로 훔쳐보던 “내 다리 내놔”는 정말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경험을 하기 충분했다.

 

비단 이런 납량특집은 텔레비전 속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닌데 학교야말로 유독 여름 시절에 퍼지는 기묘한 카더라 납량특집의 끝판왕일 것이다. 특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장마철에 삼삼오오 모여 무서운 이야기를 시작하면 벌벌 떨며 손을 꼭 잡는 친구가 있고 또 꼭 뒤에서 “워!” 하며 깜짝 놀라게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물론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도 대표적인 무시무시한 괴담들이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기억나는 몇 가지만 적어보자면 그 당시 우리학교 지하에 오고무 연습실이 있었는데 밤 12시만 되면 그 오고무가 사람도 없이 자동으로 플레이 된다는 게 내용의 요지이고 실제로 소리를 듣고 혼비백산이 되어 뛰어나왔다는 아이도 있었다고 했다. 물론 그 아이의 이름은 아무도 모르고 늘 내 친구의 친구 뭐 이런 식이었다.

 

과학실 괴담은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유사한 이야기들이 학교마다 떠돌고 있었는데 표본 해놓은 개구리 색깔이 바뀌었다, 머리가 아래를 향하고 있었는데 위를 쳐다보고 있다, 해골이 움직인다더라 같은 이야기였던 것 같다.

 

무용실 괴담은 무용실에 밤이 되면 죽은 여자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을 듣고 무용반 어떤 아이가 거짓 소문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밤새도록 무용실에서 무용 연습을 했다. 음악을 크게 틀고 대형 거울 앞에서 혼신의 힘으로 연습을 하다가 잠이 들었고 이튿날 친구들이 와서 정말 귀신이 없었냐고 물었고 선희는 활짝 웃으며 “귀신은 무슨!! 밤새 거울 보며 연습했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어!”라고 했다. 그러자 친구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선희야, 우리 무용실에는 거울이 없어!”

 

다행히 우리 학교에는 무용실 자체가 없었는데 이 이야기는 꽤나 인기가 있었다.

 

이런 괴담들은 분명 말도 안 되는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뭔가 꺼름칙해서 믿든 안 믿든 굳이 혼자 오고무실에는 안 간다든가 과학실 표본은 굳이 들여다보지 않게 되기 마련이다. 이런 이야기가 더 무섭고 잘 먹혔던 이유는 그 괴담들의 배경이 주로 내가 살거나 생활하는 동네, 학교, 집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무서운 일이 공공장소가 아닌 나만의 장소에서 일어난다면 그 두려움은 당연히 배가 될 것이다. 얼마 전 기사에서 동네 성추행범이 어떤 집 현관문 암호를 10여 분간 누르던 사건이 있었다는 내용을 봤다. 실제로 한국은 이제 왠만한 집의 현관문은 열쇠가 모두 사라지고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는 도어록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한밤중에 집에 아무도 올 사람이 없는데 울리는 삐삐삐 현관문 암호 누르는 소리는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가…… 이어서 “문이 열였습니다” 라는 소리가 들려오면 정말 기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 써 내려갈 이야기는 최근 나의 경험담으로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혼을 쏙 빼놓았던 일이다. 임산부나 노약자, 심장이 약한 분들은…… 물론 그냥 읽으셔도 무관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여름 방학 이주째였고 날씨는 습하고 무더웠다. 남편은 일이 많아 야근을 하게 될 것 같다는 문자를 보내왔고 나는 유치원 간 막내를 뺀 세 아이의 점심을 차리고 있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이 된다.

“삐삐삐삐삐”

문이 열렸습니다.

철컥

 

  • To be continued 다음 주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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