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삐삐삐 2
08/19/19  

여느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여름 방학 이주째였고 날씨는 습하고 무더웠다. 남편은 일이 많아 야근을 하게 될 것 같다는 문자를 보냈고 나는 유치원 간 막내를 뺀 세 아이의 점심을 차리고 있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이 된다.

“삐삐삐삐삐”

문이 열렸습니다. 

철컥! 

 

있을 사람은 다 집에 있고 없는 사람은 아직 돌아올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대체 누가 우리 집 비밀번호를 저리도 자신 있게 누르고 단숨에 현관문을 열었단 말인가! 식구들 모두의 이목이 현관으로 주목되는 가운데 나는 왠지 등골이 오싹해졌다. 

 

언젠가 빈집털이범이 전자식 출입문 잠금장치(도어록)의 비밀번호를 알아내 8차례나 빈집을 털다가 잡히는 일도 있지 않았던가. 그때 그 범인은 남의 집 현관문에 설치된 도어록 숫자판에 묻은 지문을 분석해 누른 흔적이 많은 번호를 임의로 조합하여 비밀번호를 알아낸 것으로 드러났었다.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닥친 것이라면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한단 말인가……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들이 뇌리를 스쳤다. 

 

그런데……

현관 중문에 들어선 사람은 다름 아닌 셋째의 친구 D였다. 믿기 힘든 사실에 내 눈을 의심했지만 일주일에 사나흘은 우리 집에 오는 우리 집 셋째의 절친 D가 분명했다. 매일같이 우리 아이가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는 걸 뒤에서 쳐다보다가 저절로 외워버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초 2학년답게 별 생각없이 순수하게 아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온 것이다. 

 

다시는 스스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말한 뒤 이틀이 흘렀다. 오후 두 시쯤 되었을까 도어벨 소리에 아이들이 스프링처럼 자동적으로 튀어올라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곧이어 셋째가 아이스크림 하나를 들고 오더니 “엄마, D가 잠깐만 맡아달래. 얘가 학원 끝나고 6시 30분에 찾으러 온다고!” 했다.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이튿날 셋째가 냉동칸을 부산하게 뒤지더니 “엄마, 집에 도둑 들었나봐. 어제 D가 맡겨놓은 아이스크림이 없어졌어. 밤에 아빠가 먹었나? 아니면 도둑?”

“아휴! 아빠가 밤에 그걸 왜 먹어??? 잘 찾아봐!” 

라고 말했지만 뭔가 기분이 시원치 않았다. 

 

같은 날 오후, 드디어 비밀이 풀렸다. 이번에는 D가 빈집에 들어왔던 것이다. 애초부터 그럴 계획은 아니었겠지만 아이스크림을 픽업하러 왔을 때 약속보다 일찍 오는 바람에 우리 집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비밀번호를 몰랐다면 망설임 없이 되돌아 갔겠지만 알고 있는 마당에 아이스크림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두 번이나 우리 집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온 D 때문에 우리는 당장이라도 지문인식 도어록을 알아봐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당장 비밀번호를 변경한다 해도 다시 알게 되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삐삐삐삐삐

도어록이라는 것이 생기고 수많은 사람들이 열쇠로부터 자유로워진 것만큼은 확실하지만 뭔가 낭만이 없어진 것만 같다. 도어벨을 누르고 누군가 문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순간은 얼마나 설레는 순간인가…… 특히 아버지 퇴근 시간 무렵 도어벨이 울리면 쪼르르 달려나가 문을 열고 아버지가 뭐라도 사 오셨나 싶어서 손부터 눈길이 가던 그때 그 시절은 얼마나 포근했던가...... 우리 집 현관문도 아예 차라리 예전같은 열쇠 타입으로 바꿔보는 건 어떠려나……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하게 되려나 …... 생각만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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