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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08/26/19  

현실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아니 있을 수 없는, 그러나 얼마든지 있을 법한 그런 영화를 봤다. 이 영화에는 부부가 일남일녀를 둔 두 가족과 부부가 가족의 전부인 한 가족, 모두 세 가족이 등장한다. 이상 10명이 이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돈 잘 벌고 아내와 자녀를 끔찍이 여기는 박 사장, 자녀 교육에 열성적인 전형적인 한국 엄마, 이성에 눈 뜬 철부지 사춘기 소녀, 귀신을 본 후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소년. 이상 4명의 박 사장 가족이 사는 현대식 대저택이 주 무대이며 여기서 모든 일이 벌어진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2019년 제 72회 칸 영화제에서 초청작 중, 최고의 영화에 수여하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작품인지라 관심이 있었다. 강하게 다가왔던 몇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장면들 모두 냄새에 관한 것으로 영화 속에서 살인까지 촉발한다.

 

내가 기억하는 냄새는 외가에서 시작한다. 어려서 외가에 자주 갔다. 1년 남짓 부모님과 떨어져 외가에서 초등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외가에서 나는 냄새가 참 좋았다. 오래된 장롱이나 가구에서 나는 냄새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냄새를 맡으면 큰 행복감에 휩싸인다.

 

외가에서 학교에 다니던 그때, 내 짝에게서 냄새가 심하게 났다. 별로 좋지 않은 그 냄새로 인해 몹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에게서 나는 냄새로 인해 가끔 헛구역질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심한 그 냄새는 그의 입에서도 났고, 옷에서도 났다. 두 냄새가 동일했다. 바다 냄새가 살짝 곁들인 약간 비릿하면서 음식물이 부패할 때 나는 냄새, 그때는 그 냄새가 무엇인지 몰랐다. 한참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되어서야 그 냄새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익히지 않은 생굴 냄새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생굴을 삭힌 어리굴젓 냄새. 아마도 친구의 부모들이 굴젓 장사를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집에서 그 장사를 했기에 집안 전체에 그 냄새가 났으며 옷에도 그 냄새가 밴 것이 아닌가 싶다. 또 친구는 식사를 할 때마다 굴을 먹었으며, 그로 인해 그의 입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냄새하면 2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빼놓을 수 없다. 아버지는 냄새를 조심했다. 당신 입과 몸에서 나는 냄새를 타인들이 맡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늘 은단을 상용했고, 향수도 애용했다. 은단 냄새와 파란 병에 든 향수 냄새가 아버지 냄새가 되어 버렸다.

 

영화에서도 냄새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저택에 사는 아이들과 부모는 자기 집에서 일하는 가사 도우미와 운전기사에게서 나는 냄새가 같다고 말한다. 심지어 영어 가정교사와 미술 지도 교사에게서도 같은 냄새를 맡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 넷은 모두 반지하에 함께 사는 부모와 자녀들이었기에 옷에 밴 냄새가 같을 수밖에 없다. 결국 냄새로 인해 살인까지 일어난다.

 

볕이 잘 들지 않고 환기가 잘 되지 않는 반지하집에 살다보면 습한 냄새가 옷에 배게 되고, 요리해 먹는 음식 냄새도 저절로 배게 된다. 그러니 가족들에게서 나는 냄새가 같을 수밖에 없다.

 

나는 단 한 번도 내 짝에게서 나는 냄새를 갖고 그 친구를 어떤 부류라고 규정하지 않았다. 어려서는 몰라서 그랬을 거고 성인이 되어 그 냄새가 무엇인가 알고 나서도 그랬다. 영화 속에서도 그들에게서 나는 냄새를 가난의 냄새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하철에 탔을 때 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라고는 말했다.

 

가끔 사람들은 마치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한다.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그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10명의 주요 인물들도 그렇다. 대저택에 사는 박 사장 부부와 아들, 딸, 반지하에 사는 기택 부부와 아들, 딸, 그리고 가사 도우미 부부. 좀 더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숙주와 기생충, 두 부류의 인간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세상 절대 다수는 그 중간에 끼인 중산층이다. 숙주도 아니고 기생충도 아닌 그런 존재, 이들이 세상의 흐름을 만들어 가고 조절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관객이 스스로 냄새로 세상을 구분 짓도록 조장하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계층을 나누게 된다. 등장하는 주요 인물 3가족 10명 가운데 대저택에 사는 한 가족 네 명을 빼고는 모두 같은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을 수밖에 없다. 후각은 근원적이고 본능적인 인간 육체의 기능이다. 냄새로 사람의 계층을 암시하는 설정은 그러한 차별과 구별이 이미 본능처럼 우리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이다. 봉준호 감독은 이렇게 나뉜 두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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