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님!"
09/03/19  

입추(立秋)가 지났다. 말복을 넘고, 처서(處暑)도 지났다. 이 무렵이면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이 된다고 처서라 한 모양인데 아직도 한낮의 더위는 에어컨을 켜게 만든다.

 

친구 둘과 오랜만에 산을 찾아 하룻밤 자고 내려왔다. 주말이면 함께 산에 오르던 친구들이다. 한참 산에 다닐 때, 셋이 함께 히말라야에 가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함께 가지 못했다. 혼자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다녀와야 했다.

 

셋이 마지막 산행을 한 지 10년도 훨씬 지났고, 자주 만나며 살지도 못했지만 금방 옛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 목사인 친구 교회에서 만나 기도를 드리고 출발했다.

 

한 친구는 초등학교 동창생이다. 학교 다닐 때는 함께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연기자인 친구는 가끔 등교했으며, 왔다가도 방송국 차가 와서 데려가는 바람에 말 한 마디 나눈 기억이 없다. 친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화랑 관창이라는 연극을 보러 남산 드라마센터에 갔었다. 극중에서 친구가 외치던 대사를 아무도 없는 곳에서 따라 해봤지만 친구처럼 멋지게 들리지 않았다. “왕자님!” 이 한 마디를 어찌나 멋지게 외치는지 지금도 그가 극중에서 외치던 소리를 기억한다. 에코가 들어간 소리를. 우연히 미국에서 만나 산을 함께 다녔고 가끔 연락하며 만나고 있다.

 

다른 한 친구는 미국에서 만나 산에 다니면서 친분을 쌓게 되었고,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 함께 수련을 하면서 더 가까워졌다. 그러다가 5~6년 전에 예수를 만나 깨달았다면서 신학교에 가서 공부했고, 몇 년 뒤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처음에는 아프리카, 러시아 등지로 선교를 다니더니 목회를 시작해서 지금은 개척교회 목사로 재직 중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밤길을 걸었다. 친구들은 옛날 한참 산을 오르내릴 때의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걸음걸이가 빨라 자연히 뒤에서 걷게 되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쉬지 않고 나눴다. 한동안 만나지 않았기에 쌓인 얘기도 많았다.

 

산책에서 돌아와 차를 끓여 마시며 이야기는 이어졌다. 그때 친구가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한국 정치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혹시 자기 얘기가 불편하면 그만두겠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친구의 말을 막지 않았고 친구는 얘기를 이어 갔다. 북한과 미국, 일본을 거론하며 현 한반도 정세를 이야기 하다가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관한 이야기에 이르자 목소리가 커졌다. 목사인 친구도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나도 합세했다.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실세 중의 실세인 사람이다. 그가 내세우던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가족들을 위해, 자식을 위해, 재산 증식을 위해 지위와 권력을 이용하지 않았을까 의심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재판이 끝난 뒤에 밝혀지겠지만 아무리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자신이 외치던 사회개혁과 정의사회 구현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친구들은 구체적으로 사안 하나 하나를 열거하면서 이야기 했지만 지면을 통해 또 다시 거론하고 싶지 않다. 본래 정치와 거리를 두고 사는 두 친구가 이렇게 분노하고 있으니 고국에 사는 분들은 얼마나 좌절하고 허탈해 하고 있을까 걱정이 된다.

 

올바른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가족, 자식, 돈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지는가 보다. 이는 나에게 적용하는 윤리 기준과 타인에게 들이대는 도덕적 잣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비단 이 사람뿐만이 아니다. 우리들 모두 타인을 측정하는 자나 저울로 나를 측정하지 않는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너무했다. 무자비할 정도로 지나쳤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 걸었다. 공기가 제법 차다. 긴팔 윗옷과 긴바지를 입었지만 춥다. 역시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걷기 시작할 때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으나 점차 주위가 밝아지면서 아침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기온도 처음에 56도였으나 60도를 넘어섰다.

 

대엿새 뒤에는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백로(白露)요, 얼마 지나지 않아 밤이 낮보다 길어진다는 추분(秋分)이다. 자연의 섭리처럼 우리 인간의 삶도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순리대로 순환한다면 그 누구에게도 절대적 가치가 그대로 인정되는, 그 누구에게도 같은 정의와 진리 기준이 적용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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