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유감
09/09/19  

법무부 장관 인사 청문회가 끝났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 국회의 검증 절차를 거치게 함으로써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다. 권력분립의 취지에 따라 국회에 부여된 권한으로, 대통령이 인사권을 남용해 정치적 보상으로 고위 정무직을 결정할 가능성을 견제하고, 대통령이 임명 및 지명하는 공직 후보자가 적합한 직무 능력과 자질, 도덕성을 갖추었는지를 검증하는 제도다.

 

고위공직자를 뽑을 때 수행할 업무에 맞는 적격자를 임명하려는 데에 의의를 두었으나 현실에서는 후보자를 인선하는 청와대의 사전 검증이 미흡하고, 청문회에서도 정책검증 보다는 여야 간의 정쟁이나 지나친 인신공격에 매몰되어 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도 이런 비판을 비켜가기 어렵다. 여야가 둘로 나뉘어 한쪽은 후보자를 감싸며 응원했고, 다른 한쪽은 후보자와 가족의 불법과 탈법을 지적했다. 그동안 언론에서 다루었던 내용을 그대로 묻고 답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딱 한 사람,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후보자를 감싸고도는 다른 여당의원과 달리 후보자를 준엄하게 꾸짖었다. 후보자가 자신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였음에도 그의 잘못을 지적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다른 의원들처럼 큰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어떤 의원의 소리보다도 크게 들렸다.

 

젊은 세대가 충격 받은 것은 공정함에 대해 후보자가 해온 말과 실제 살아온 삶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후보자는 학벌이나 출신과 달리 진보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이유로 비판받는 것이 아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언행 불일치 때문이다. 후보자는 비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 후보자가 '위법은 없다. 결정적인 한 방은 없지 않느냐'고 했으나 이는 상식에 맞지 않는 답변이다. 후보자는 이른바 '강남 좌파는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니냐'라고도 했다. 역시 엉뚱한 답이다.

 

진영 간의 대결이 된 현실, 정치적 득실 등 많은 고려사항이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을 저울 한쪽에 올려놓고 봐도 젊은이들의 상처가 걸린 반대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후보자의 딸은 사실상 의전원 재수를 위해 적을 두고 있던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재학 중 장학금을 받았다. 당시 후보자는 서울대학교 교수였다. 또한 후보자의 딸은 동양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는 어머니 밑에서 연구보조원으로 등록하고 보수를 받았다. 지방대의 어려운 재정 형편, 그리고 연구보조원이 되기 위한 지방대학생들의 간절한 바람을 생각할 때 정말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서울대, 그리고 동양대 교수인 부모는 설사 딸이 원했어도 자기가 재직하는 학교에서 그렇게 못 하게 해야 했다.

 

후보자가 임명되면 우리 사회 공정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언론보도에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 시스템이 문제라고 하면서 후보자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도 한다. 후보자도 그 당시 대입 제도를 얘기한다.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휴학하고, 학업을 지속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뛰어야 하는 젊은이들이 이번 논란을 지켜보고 있다. 후보자 임명이 그들에게 하나의 상징이자 시금석이 되어 있다. 만약 후보자가 이대로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다면 그들이 어떤 상처를 입을지, 우리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기대나 가치관에 얼마나 큰 혼란을 느낄지 짐작하기 어렵다.

 

한 야당의원의 행동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온 국민이 지켜보는 청문회장 한 복판에서 어떻게 후보자가 제출한 서류를 갈기갈기 찢는단 말인가? 극단적이고 과장된 튀는 행동으로 무언가를 얻어 보겠다는 속셈이 엿보이는 유치한 행동이다. 품위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몰상식한 행동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4시간에 걸친 청문회가 끝났다. 여당도, 야당도, 국민들도 청문회 전이나 다름없이 여전히 혼미한 상태다. 후보자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의 문제는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자식을 위해 내가 갖고 있는 지위와 여건을 100퍼센트 활용하며 사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 후보자에게서도 느껴져서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도를 넘어서는 처사였다.

 

총체적으로 부패와 비리에 젖어 있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넘어서는 안 될 법이란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을 세우고 엄수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법무장관이다. 만일 대통령이 그를 법무장관으로 임명한다면 그에 대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은 그치지 않고 이어질 것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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