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회 회장 선거
09/16/19  

비구니(比丘尼)는 여승(女僧), 즉 불교의 여성 수도자를 일컫는 말이다. 범어 ‘비크슈니(bhiksuni)’, ‘비쿠니(bhikkhuni)’에서 유래한 말로 ‘걸식하는 여자’라는 뜻이다.

 

세계 최초의 비구니인 석가모니의 이모이자 계모 ‘마하파자파티’는 세 번이나 출가를 허락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제자 아난다의 거듭되는 청원에 석가모니는 비로소 출가를 허락했다. 그러나 비구니들은 비구들과 대등하게 대접 받지 못했고, 반드시 비구를 공경하도록 강요당했다. 당시 인도는 지금보다도 더 심각하게 여성 차별적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시대적인 강요라고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기록에 의하면 석가모니는 여성 교단을 허락하였다. 그 후 비구니 교단은 번성했고, 여러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이 출가하였다. 불교에 전하는 게송집인 테리가타(Therigata)에 의하면 많은 뛰어난 비구니들이 자신들의 영적 자유를 찬탄하고 있다.

 

아소카왕부터 기원후 250년경까지는 인도전역에 불교 교단이 번성하던 시기로 비구니 승단도 많았다. 당시 세워진 비문들이 비구니 승단의 번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3세기 이후 인도에서 비구니 승단은 점차 축소되었다. 더구나 여러 지역에서 힌두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불교 자체가 쇠퇴하게 되었다. 오늘날 인도를 비롯한 남방 불교에서는 비구니들의 존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한국, 타이완, 중국, 일본 등지에서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 조계종 산하 비구니는 약 6,000명에 달한다. 이는 조계종 전체 승려 12,000여 명의 절반에 달하는 숫자다. 바로 이 절반을 대표하는 비구니회 회장 선거가 오는 18일 벌어진다. 제12대 전국비구니회장 선거가 전국비구니회관 법룡사에서 열린다. 이번 선거는 현 11대 회장인 육문 스님과 중앙승가대학 명예교수인 본각 스님 양자대결로 치러진다.

 

8월말 후보자 등록을 마치자마자 육문 스님 후원회에서 본각 스님에게 육문 스님을 지지하면 차기 회장이 되도록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이에 대해 꿈쩍하지 않고 선거운동을 계속하자 육문 스님 후원회 측에서는 본각 스님 흠집 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본각 스님이 과거 한 언론과 인터뷰할 때 초, 중등학교에 다니지 않고 고교에 진학했다는 발언을 찾아내어 학력 위조라고 주장하면서 후보자로서 부적격자라고 했다. 그러나 본각은 맞대응을 하지 않고 담담하게 반목과 갈등이 아닌 ‘소통과 화합’의 가치를 생각하는 전국비구니회 회장 후보가 되겠다고 했다. 오히려 “자신의 부덕으로 인해 스님들이 그런 자리를 마련하신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우선, 소중한 말씀을 겸손한 자세로 경청하겠다. 또한 이런 모습들이 제12대 전국비구니회 회장 선거를 혼탁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 1,700년 역사의 한국불교는 물론 청정수행 가풍과 유구한 법맥을 이어온 비구니승가의 발전을 위한 것임을 마음 깊이 새기겠다.”고 했다. 본각 후보자의 이러한 발언은 상대의 비방을 맞받아치지 않고 겸허히 수용하며 화합과 소통을 강조하는 미래를 위한 답변이다.

 

이제 불가도 선거를 통하지 않고 회장을 추대하던 전근대적인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케케묵은 전통은 벗어버려야 한다. 묵은 때를 벗겨 내듯이 깨끗이 닦아내고 새로운 역사의 장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세속의 정치판처럼 비구니승가가 반목과 갈등에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 된다. 각 후보를 지지하는 양쪽이 서로 비방하고 상대를 흠집 내려는 노력을 하지 말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서로 머리를 맞대고 협력해 나가야 한다.

 

이번 선거는 현 회장이 회장 직을 유지한 채 입후보했다. 때문에 공정성에 대한 우려를 피해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립적인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지 않았고, 유권자 명단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후보들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홍보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유권자인 비구니들 역시 향후 4년간 비구니승가를 이끌어갈 비구니회 회장 후보자들이 제시한 각종 종책을 살펴볼 권리가 있다. 이것이 공명선거의 가장 기본적 요소이다.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혼탁한 세속의 선거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구니도 아니면서 게다가 한국에 살지도 않으면서 한국에서 치러지는 비구니회장 선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에 대해 망설임이 없지 않았으나 세속의 선거와 다른 비구니 스님들의 선거에 대한 기대가 컸던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한국 비구니회뿐만 아니라 불교 조계종이 처절한 자기반성을 바탕으로 중생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한국 불교도 인도 불교처럼 전설과 유물만 남겨 놓은 채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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