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려는 사람들
09/23/19  

추석 연휴 동안 한국에서 온 여러 사람들 만났다. 그 중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생면부지의 60대 부부와는 주말 저녁을 두 번이나 함께했다.

 

그 부부는 한국의 정치, 경제 상황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불안해 지고 있어 미국으로 이주할 계획이라면서 집을 한 채 사두러 왔다고 했다. 이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이틀간 머물면서 주택시장을 돌아봤고, LA와 OC 일원의 매물들도 이틀 동안 둘러 봤다고 했다. 지난 7월에는 말레이시아에 주택을 장만했다면서 말레이시아는 9,000만 원 정도만 내면 10년 거주증을 주기 때문에 생활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내 나라를 두고 떠나는 이민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으나 경제도 안 좋고 정치 상황도 복잡하다 보니 어차피 떠날 거라면 지금 떠나는 게 낫지 않겠냐고 내게 동의를 구했다.

 

그가 말했다. 안 먹고 안 쓰면서 정당하게 번 돈을 국가가 다 빼앗아 가려고 한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데 수십억을 물려주려면 50%의 세금을 각오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100억을 물려준다면 그 중 50억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상속세 면세 한도가 1,100만 달러(약 131억 원)이기 때문에 130억 이하를 상속한다면 세금으로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말레이시아에 주택을 장만한 그가 미국에도 집을 사두려는 이유는 분명했다.

 

월요일 점심을 함께 한 10여 살 연하의 옛 직장 동료는 이곳에 정착해 살다가 가족들을 두고 한국으로 나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은퇴 후에 이곳으로 돌아와 식구들과 함께 살 계획이라면서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앞날을 계획하고 있었다.

 

월요일, 수요일 이틀 저녁을 함께 한 50대 부부는 스물다섯 살의 아들, 스물한 살의 딸과 여행 중이었다. 아빠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으며 엄마는 자녀들과 미국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이었다. 자녀들은 십여 년 전부터 캐나다와 미국에서 공부해왔으며, 부부는 은퇴 후에 살 터전을 미국 내 어느 곳으로 해야 할지 궁리 중이었다. 캘리포니아가 살기 좋기는 하지만 세금이 너무 많아 고심 중이라고 했다.

 

이들은 모두 대한민국의 온 국민들이 둘로 나뉘어 싸우고 있다면서 이념 대립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정치적 불안정을 걱정하고 있었다. 또, 한국의 화폐 가치가 하락하고 주식시장이 하락세를 거듭하는 등 실물경제가 위기라고 생각할 만큼 안 좋다고 했다. 즉 경기 불황으로 인해 더 이상 자신들이 보유한 자산의 가치를 지키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 이상 대한민국에 희망이 없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자신들은 괜찮지만 자식들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이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려 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투자이민 설명회가 성황이라고 한다. 그 중 사람들의 관심이 가장 높은 곳이 미국이다. 미국 이민국이 11월부터 투자이민 최소투자액을 두 배 가까이 올린다는 방침을 내놓았기 때문에 규제 강화 이전에 신청하려는 사람들이 대거 몰려들기 때문이다. 캐나다, 호주는 물론 심지어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등의 유럽 국가, 말레이시아 같은 동남아 국가까지 투자이민 대상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에 불고 있는 이민 열풍은 앞에서 설명한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외국으로 이주해서 잘 살 거라는 보장이 없다. 미국의 경우만 해도 과거처럼 이민자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즉 이민자들이 기회를 잡기가 과거에 비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한국의 상황이 좋지 않고 시장 전망이 어둡다 보니 해외에서 기회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쉽게 포기하려 들지는 않겠지만, 한국정부도 그들의 인식 전환을 위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 국민들 누구나 안심하고 삶을 누릴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더욱더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도 그리 녹녹치 않다.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총기 사건, 노숙자 문제, 중국과 펼치고 있는 무역전쟁, 별 소득이 없이 이어지고 있는 북미대화 등 트럼프가 국내외에 펼치고 있는 강력한 미국을 만들기 위한 정책들이 우리들의 실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있지는 않으니 말이다.

 

한국을 벗어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한국에서 잘 사는 사람들은 미국에 와도 잘 살고, 미국에서 잘 사는 사람은 한국에 가서도 잘 산다. 즉 국가의 정책이나 여건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이 어떤 삶의 자세로 살아가는가가 더 중요하다. 다음 달에는 미국에서 30년을 살다가 3년 전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가 여수 돌산리에 땅을 사서 손수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친구가 이곳을 잠시 방문한다. 그 친구는 과연 어떤 얘기를 펼칠지 기대가 된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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