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걷는다
09/30/19  

2019년 제 17호 태풍 타파가 온다는 날 고국을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타파는 제주도에 도착하면서 기운을 잃고 한반도를 벗어났다. 태풍으로 인해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심지어 내가 탄 항공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하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는 걱정이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딸과 함께 올림픽공원을 걸었다. 딸은 이웃들과 일주일에 두세 번 걷는다고 했다. 조금만 걸어도 발바닥이 쑤시고 다리가 아프다며 걷기 싫어하던 예전의 딸이 아니었다. 남녀노소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높은 기온으로 재킷을 벗어들고 걸어야했다. 그 다음 날 아침은 등교 전에 손주들이 따라 나와 백제 토성 주위를 함께 걸었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셋째 날은 북한산을 찾았다. 북한산은 삼각산이라고도 부른다.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등 북한산을 대표하는 세 봉우리를 상징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북한산, 즉 삼각산은 명산 중의 명산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일년에 약 1,000만 명이 찾는다.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늘 하얀 구름에 둘러쌓여 있다는 백운대는 해발 836.5미터로 정상에 여남은 명 이상의 사람들이 둘러앉을 정도로 평평한 마당이 펼쳐져 있어 백운봉이라 부르지 않고 백운대라고 부른다. 인수봉은 바위 덩어리 그 자체가 엎어져 있는 형상으로 대한민국의 암벽 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만장대는 조선 건국 시 무학대사가 새 나라의 도읍터를 정하기 위해 올라서서 바라다보았다고 해서 국망봉이라고도 불린다.

 

북한산은 이 세 봉우리를 두고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작은 봉우리들이 줄지어 있으며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에 총길이 70킬로미터에 달하는 21개의 둘레길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으나 둘레길에서 벗어나 조금만 숲으로 들어서면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웠다. 칼바위 지킴터를 지나 해가 쨍쨍 내려 쬐는 칼바위 서북 능선을 피해 남동쪽 숲길로 들어가서는 삼성암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삼성암을 지나 화계사로 내려왔다.

 

지난봄에도 세 차례나 찾은 바 있으나 친구의 배려로 올 때마마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친구는 올가을 무박 2일 지리산 종주를 계획하고 있어 체력단련을 위해 매일 서너 시간 이상 산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박 2일은 어떻게 걷는 것인가 물으니 가고 올 때 차안에서 이틀을 자기 때문에 무박 2일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한 밤 중에 차를 타고 내려가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산행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차를 타고 올라오며 차안에서 잔다는 얘기인 모양이다. 그렇게까지 무리 하면서 걸을 필요가 있는가 묻고 싶었으나 묻지는 않았다.

 

화계사로 내려와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가 값싸고 맛있다는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5,500 원이라는 가격이 무색할 정도로 맛있었으며 반찬으로 나온 깍뚜기와 샐러드도 맛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당일에는 동생들을 만나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식사를 시작할 때부터 끝까지, 근처 찻집으로 옮겨 커피를 마시면서도 '걷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라톤을 100번 가까이 완주한 동생은 더 이상 마라톤을 하지 않는다면서 매일 아침 10킬로미터를 걸어서 출근하고 있었다. 막내 동생은 6시에 출근해서 회사 근처 공원에서 10.5킬로미터를 걸은 후에 9시부터 업무를 시작한다고 했다. 여동생 역시 10여 년 가까이 매일 하던 수영을 잠시 쉬며 걷기에 열중하고 있으며, 수영은 일주일에 2회 정도로 줄일 계획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은 온 국민이 걷고 있었다. 산에서 들에서 공원에서 거리에서 지하도에서 방방곡곡에서 힘차게 걷고 있었다. 한반도에 불고 있는 바람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새 나라의 도읍터를 정하기 위해 만경대에 올라 국망봉 전설의 주인공이 된 무학대사가 만경대에 올라 오늘날의 수도 서울을 내려다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태풍의 기운이 약해져서 별 피해를 입지 않았던 것처럼 몇 달째 대한민국에 거센 풍파를 일으키고 있는 바람이 스스로 잠들거나 고요해져 평안한 날이 되기를 고대한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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