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편지를
09/30/19  

가을이다. 이렇게 또 여름이 서서히 식어간다. 나는 어릴 때 보통의 계절을 정확히 삼개월 단위로 배웠기 때문에 9월, 10월 11월은 날씨나 지역에 상관 없이 나에게는 무조건 가을이다. 아직도 미련이 남아 대낮에는 종종 선풍기를 틀기도 하지만 새벽마다 이불을 찾는 손길이 바빠지고 손끝이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나무가 가로수길을 물들이기 시작하니 가을이 분명하다. 



걷다가 바라본 하늘, 구름은 간간히 높은 하늘 밑을 배회한다.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은 하루에 세 번은 하늘을 바라본다던데 나도 일부러 신경쓰지 않더라도 그쯤은 하늘을 보게되는 것 같다. 집이 14층인 덕분에 오며가며 손쉽게 거실 창문이나 부엌 창문으로도 수시로 하늘을 볼 수 있는 것도 크게 한몫한다. 매일 바라보는 하늘은 똑같은 것 같지만 유독 아름다운 하늘이 있고 쓸데없이 쓸쓸하고 서글픈 하늘도 있다.



오늘의 하늘은 보고픈 사람들이 많아지는 그런 하늘이다.  그 하늘을 보고 있자니 그리운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어진다.  그저 스쳐 지나간 사람들부터 몇 번 만났지만 이름이나 얼굴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들까지 모두의 안부가 미치도록 궁금한 날이 종종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같은 서정적인 가을 노래 때문인가 유독 가을이 되면 그리운 이도 많고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아진다.



손글씨 편지라면 좋으련만 잔뜩 수집해 둔 편지지들은 어디에 쳐박혀 있는지 또각또각 편지 쓰기 적당한 펜들은 또 어디로 굴러갔는지 결국 휴대폰을 꺼낸다. 그리고 휴대폰 메모장에 ‘벌써 가을이다’ 한 줄 쓰고는 멍하니 오래 오래 하늘만 바라본다. 여기가 가을이면 그곳도 가을이고 내가 정신없이 사는 동안 그들도 정신없이 살고 있었을 텐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할지 괜히 어렵기만 하다. 문자다 이메일이다 SNS까지 안부 묻기 참 쉬워진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끔은 더 어렵다는 생각마저 든다. 뭔가 그리움을 담아 따뜻한 언어로 안부를 전해본 지는 참 오래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세상과 내가 변하는 동안 이제 나는 단풍이 예쁜 것도 알겠고 낙엽이 고운 것도 알겠다.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알겠고 가을이 얼마나 농염한지도 알겠다. 지난 몇 년 사이 원래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담백한 나물 반찬이나 땀 줄줄 흘리며 먹는 보양식들을 맛있게 먹게 되었고 답답해서 신기 싫어했던 양말의 포근함도 알게 되었다. 잘생기고 예의 바른 훈남 젊은이를 보면 가슴이 설레이기 보다는 우리 아들들이 저렇게 커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래, 어느덧 내 나이도 늦여름 초가을을 지나고 있다.



결국 오늘도 메모장에 편지를 완성하지 못한 채 연신 하늘만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지만 그저 잘 살겠지하면서 가슴으로만 그들의 안녕을 빌었다.  아직 늦은 더위를 품은 가을 햇살이 따사롭지만 선선한 바람때문인가 어디로 가는지 모를 구름 때문인가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해져 왔다. 이런 감성마저 애 넷 딸린 중년 아줌마에게는 사치인 듯싶어 얼른 마음을 정비하고 일어선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나지막이 흥얼거린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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