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찾기
10/07/19  

한국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매일 아침 산책을 했다. 6시쯤 나와 한 시간 남짓 한강변이나 올림픽공원을 걷는다. 둘째 날부터 손녀 손자도 따라나섰다. 첫째(손자)와 막내(손자)는 아침잠이 많아 일어나지 못하고 둘째(손녀), 셋째(손자)와 함께했다.

 

산책 도중 별거 아닌 일로 둘은 자주 티격태격했다. 평소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은 자기들끼리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기에 나서지 않았고 자기들끼리 해결하곤 했다.

 

18호 태풍 미탁이 한반도를 덮쳐 사상자가 발행할 정도로 큰 피해를 냈던 그 다음 날 둘 사이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의 발단은 줄넘기 시합이었다. 둘째가 셋째보다 키도 크고 나이도 한 살 위인지라 더 잘 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셋째가 둘째를 이겼다. 그냥 줄넘기는 물론 X자 꺾기, 연속 돌리기, 발바꿔 돌리기, 어느 것 하나 둘째는 셋째를 이기지 못했다. 승부는 결정되었고 나는 승자의 이름을 부르며 박수를 쳐주었다. 어쩌면 이것이 화근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시합이 끝난 후 셋째가 줄넘기 줄을 둘째에게 돌려주는데 둘째의 손에 건네지기 전에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자 둘째는 줄을 주워 다시 건네줄 것을 요구했고 셋째는 자신이 건네주는 것을 못 받았으니 직접 주우라며 둘째의 요구를 거절했다. 둘이 옥신각신하는 것을 못 본 척하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둘이 어떻게든 해결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둘은 줄을 그대로 두고 내게 달려왔다. 둘째가 할아버지가 해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난 둘이 해결하라고 했다. 둘째가 언성을 높이며 셋째에게 돌아가서 가져오라고 했으나 셋째는 받지 못한 사람이 가서 갖고 와야 한다고 맞섰다.

 

집 앞에 도착해서는 둘째가 울고불고 악을 쓰면서 할아버지가 동생에게 갖고 오라고 시켜야 한다면서 항의했다. 내가 말했다. 손에 제대로 건네주지 않은 사람이 잘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신의 물건을 그대로 두고 온 것도 잘못이라고. 둘째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내가 주워 와야 하냐며 건네줄 때 떨어뜨린 사람이 갖다 줘야 한다고 항의했다. 결국 줄넘기 줄을 그대로 산책길에 버려둔 채 집으로 들어왔다. 둘째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셋째와 식탁에 앉았다. 내가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셋째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셋째의 손을 잡고 줄넘기 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셋째는 누군가가 갖고 가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는지 마구 달려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줄넘기 줄은 거기 그대로 있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둘째는 거실에 나와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둘째는 다시 제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셋째에게 말했다. 누나에게 잘못했다고 말하면서 줄넘기 줄을 건네주라고. 이후 둘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평소처럼 하루를 보냈다.

 

개천절이었다. 학교 동창, 선후배들이 참 많은 사진을 보내 왔다. 광화문 광장에 모여 법무부장관 물러나고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군중 속의 자기 사진, 집회에 참가한 동창 선후배들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지난주에는 대검찰청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검창총장 물러나라는 구호와 법무부장관을 지지한다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한국은 이렇게 두 집단으로 나뉘어 서로를 비방하고 물러나라 외치고 있다. 그들은 마치 줄넘기 줄을 놓고 벌이던 손녀 손자의 다툼처럼 자신들의 입장만을 반복할 뿐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분명히 누군가가 거짓을 얘기하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의 잘못인지 알고 있다.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위해 나서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만을 외치고 있다.

 

개천절 다음날 산책 길이었다.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 왔다. 길을 건너려고 발을 내딛는 순간 승용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내 앞을 지나갔다.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그 장면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으며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이 이해되었다. 그저 나만 다치지 않으면 그만이다. 다른 사람의 불편이나 손해는 상관없다. 나와 내 자식, 내 가족만 잘 되면 된다. 준법정신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적당히 눈치보면서 약간의 위법이나 범법을 저질렀다 해도 권력이나 돈을 쥐게 되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과연 이런 나라에서 정의로운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사소한 교통법규부터 바로 해야 하지 않을까.

 

더 이상은 안 된다. 국력을 패싸움에 소모하지 말자.

 

특정 정당이 좋아서도 아니고 미워서도 아니다. 무엇이 잘못되고 어느 것이 옳은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 어느 쪽을 편들기 위함이 아니다. 어린 아이들도 무엇이 잘못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 하물며 국민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이들이 모를 이 없다. 제자리로 돌려놓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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