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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혼밥
10/07/19  

빨리 먹어라, 흘리지 마라, 싸우지 마라…... 제발 이런 소리 좀 안 하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속 편히 밥을 먹는 것이 오랜 소원이었다. 2007년 첫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늘상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뜨거워야 하는 음식은 다 식어서 먹기 일쑤, 잘 익은 국수는 퉁퉁 불어서 먹기 일쑤였다. 애 먹여가며 요령껏 먹는 것이 익숙해질 만하면 아이가 한 명씩 추가 되었으니 편안하고 따뜻해야 할 집밥이 나에게는 스트레스, 난장판, 오만상의 향연이었다. 

 

그런데 점차 아이들이 커가며 학교며 학원이며 나보다 빠듯한 스케줄이 생기고 나도 주 5일 출근하지 않다 보니 집에서 혼자 식사 할 일이 늘어났다. 요즘 너도나도 즐겨한다는 혼밥을 하는 셈이다. 얼마나 소원하고 갈망했던 일이었던가...... 오롯이 혼자 조용히 내가 먹는 음식에 집중할 수 있는 이 순간을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특별히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도 없는데 꼭 TV를 켜거나 음악을 틀게 된다. 그도 아니면 휴대폰이라도 손에 쥐어야 마음이 편해진다. 늘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식사 시간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걸까? 정적이 흐르는 식사는 너무도 낯설다.

 

혼자 느긋하고 고상하게 한끼 제대로 챙겨 먹으면 좋으련만 나를 위해 뭔가를 요리하는 것은 왜 그리도 번거롭게 느껴지는가. 매일 네 명의 아이들을 위해 메뉴 고민하고 차리고 치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나머지 최대한 간편하게 해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침을 굶거나 방울 토마토 몇 개 주워 먹은 날은 정오가 되기도 전부터 배에서 꼬르륵 꼬르륵. 이게 진짜 배가 고픈 것인지 그냥 소리만 나는 것인지 언제나 불룩한 내 배를 봐서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나는 어디 먹이 좀 없나하고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부엌과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한다. 하나 남은 컵라면이나 간편식을 발견하면 사막에서 오아시스라도 만난 사람처럼 눈이 번쩍 뜨인다. 이도저도 찾지 못하면 배가 고프니 마음이 급해져서 요리고 플레이팅이고 다 집어치우고 손에 닿는대로 아무 접시나 가져다가 밥 한 주걱 푸고 반찬 그릇은 따로 꺼내지도 않고 대충 접시에 주워 담는다. 나름 한 접시에 이것 저것 담아 먹는 뷔페 스타일이지만 뭐 반찬은 그리 훌륭할 리 없는 어제 먹다 남은 것들이다. 나를 위한 요리는 달걀 프라이 정도로 충분하다.

 

그래도 우걱우걱 먹기 시작하면 ‘아아! 밥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나요?’ 싶다. 먹다 보면 밥 한 주걱 더 퍼오고 싶고 숟가락 내려놓을 줄 모르겠고 그렇게 결국 접시를 박박 긁다가 비로소 정신을 차리게 된다. 아…… 이 죽일 놈의 입맛…… 나이 먹으면 이 맛도 저 맛도 다 그 맛이라는데 왜 나는 이렇게 모든게 맛있는 것일까 생각하며 오늘의 혼밥을 마친다.

 

암튼 이렇게 혼자 점심을 라면이나 간편식으로 대충 때우는 일이 잦아지자 남편이 "밥 먹는 게 어째 점점 어머니 닮아가네?"라고 한마디 한다. 뭔가 달갑지 않은 사실은 늘 이렇게 가장 측근으로부터 뒤통수 얻어맞는 것처럼 깨닫게 된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다. 사실이니깐. 예전에 엄마가 오후 서너 시쯤 식탁에 앉지도 않고 부엌 한켠에 서서 작은 공기에 밥과 반찬을 수북히 담아 5분만에 대충 한끼 때우는 모습을 보면 "엄마는 그게 점심이야? 저녁이야? 아니 좀 앉아서 먹지 왜 그러고 먹어? 그릇도 좀 큰 데다 먹으면 안 돼?" 하며 말도 안 되는 짜증을 부렸건만 왜 나도 닮아가는 걸까? 정녕 엄마들의 혼밥은 좀 더 우아할 순 없는 것인가?

 

오늘도 내가 먹은 혼밥에 반성하며 내일은 좀 더 나를 위해 건강한 밥상을 차려 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5첩반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라면, 간편식, 냉동음식 등은 좀 피해보자고 말이다. 아이들 입맛을 고려하지 않고 홀가분하게 선택한 메뉴, 오롯이 차지하는 나만의 밥 그릇과 반찬, 식재료 하나하나에 초집중할 수 있는 이 여유로운 식사 시간을 좀 더 즐기고 만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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