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사람들, 바쁜 나라
10/21/19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살고 있었다. 모두가 뛰거나 종종걸음으로 급히 걸었다. 어디를 그리 바쁘게 가는지 한 사람, 한 사람 붙잡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서둘러 가는 사람을 잡고 어디를 그리 바쁘게 가냐고 묻다가는 뺨이 성치 않으리라는 생각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바쁜 사람들 틈 속에서 언제나 천천히 여유를 부리고 다녔다. 그 비결은 목표지점까지 가는데 소요되는 예상시간보다 30분 내지 40분 일찍 출발하는 거다. 예를 들어 약속장소까지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곳에서 만나기로 했다면 2시간 정도 걸린다고 생각하고 출발했다.

 

그러나 열흘쯤 지난 뒤에는 나도 그들과 같이 달리고 있었다. 내가 천천히 걷고 싶어도 앞뒤에서 급히 걷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 혼자 천천히 걸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천천히 걷기가 대단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일찍 나와서 뛰기까지 하다 보니 약속시간보다 1시간 30분 정도 일찍 도착한 적도 있었지만 천천히 여유 있게 주위를 둘러보며 기다릴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전철역에는 지상에서 개찰구까지 직통으로 연결되는 승강기가 있었다. 그 승강기를 타면 계단을 내려가서 에스컬레이터로 바꿔 탄 후에 개찰구로 가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계단으로 다녔으나 승강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승강기를 주로 이용했다.

 

승강기에 타고 문이 닫히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린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승강기 문이 천천히 닫히도록 장치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승강기에 타자마자 ‘문 닫힘’ 버튼을 누른다. 그 앞에서 승강기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어도 못 본 체 하고 눌러버린다. 그러나 승강기 문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절대로 닫히는 법이 없다. 아무리 버튼을 여러 번 눌러도 승강기 문은 닫히지 않는다. 닫힐 때가 돼야 닫힌다.

 

승강기에 타고 저절로 문이 닫히기를 기다리는데 저 멀리 승강기를 향해 달려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승강기 문이 닫히지 않도록 팔을 한 쪽 문 앞으로 내밀고 그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승강기에 타면서 사람들이 고맙다고 했다. 기분이 좋았다. 그날따라 개찰구를 거쳐 승강장에 서자마자 전철이 바로 도착했다. 아주 재수가 좋은 날이다.

 

이렇게 지하철을 타고 가서 각계각층의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 공직에서 은퇴한 사람, 기업에서 평생 근무하고 은퇴한 사람, 교직에서 은퇴한 사람,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직장인, 자영업자, 현직 교사 등 모두 다 잘 살고 있었다. 은퇴한 사람들도 꼼짝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사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분주하게 살고 있었다. 은퇴 후에 성악을 배우는 사람, 방송통신대학에 다니며 공부하는 사람, 사회단체에서 봉사하는 사람,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사는 사람, 지방으로 내려가 전원생활을 하며 직접 농사지으며 사는 사람, 대부분 겉으로 보기에 여유가 있어 보였으며 마음 편하게 살고 있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80대에서 4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연령층은 다양했다.

 

대부분 행복해 보였고 자기 생활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그들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세 부류로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광화문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서초동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 그리고 어느 곳에도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굳이 숫자로 나누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 중 열 사람 이상이 광화문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었고, 서너 명이 서초동 집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어느 쪽 집회에도 참석하지는 않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어느 한 편에 속해 있었다.

 

어느 날, 여러 사람들과 만나 식사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식사하고 옛일을 회상하며 웃고 떠들며 술잔을 나누고 대화를 할 때는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집으로 가기 위해 한 차를 타고 가다가 문제가 발생했다. 광화문을 지날 때였다. 한 사람이 당시 법무부 장관에 대해서 어쩌고저쩌고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지체 없이 날선 공격이 튀어나왔다. '그분에게 어떤 문제도 사실로 들어난 게 없는데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평소에 말이 없고 언제나 웃기만 하던 사람이었다. 지지 않고 맞받아서 입을 열려는 사람의 손을 슬며시 잡아 눌렀다. 그리고 이틀 뒤 법무부장관이 사퇴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오늘도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부지런히 어디론가 가고 있으며 그 움직임 속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각자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변화를 위한 바람과 의지의 표출이다. 무엇을 향해 어디로 가고 있는가는 역사가 증언해줄 것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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