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돼지
10/28/19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시월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렀고 공원은 제법 알록달록 가을 옷을 갖춰가고 있었다. 몇달전부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이면 올림픽 공원에 온다. 아이들이 몇달전부터 올팍(올림픽공원의 준말이자 별칭) 실내 수영장으로 수영 강습을 받으러 다닌다.

 

목요일이었던 어제도 오후 5시 강습 시간에 맞춰 올림픽 공원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깜빡깜빡. 주차장 우회전을 기다리며 눈앞 시야에 들어온 풍경은 분명 평소와 달랐다. 어수선했다.  특히 사람들의 표정은 어딘가 불안했고 경직되어있었다. 거기다가 이게 웬일인가!

 

총이다! 분명 주차장에 서있는 남자들 손에 총이 들려있었다.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총을 보는 일은 굉장히 희귀해서 총이 의미하는 불안감은 훨씬 크다. 주차장 인파 속에 권총도 아닌 엽총 든 사냥꾼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체 무슨일인가…… 엽총 든 엽사들이 서울의 공원 안을 걸어다닌다니! 길가로 응급차도 대기 중이고 평소와 달리 어수선한 것이 분명 심상치않은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 일단 차를 세워 아이들을 수영장에 들여보내고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답게 인터넷 검색창에 이것 저것 집어넣어 본다. 얼마 안되어 멧돼지 기사가 줄줄이 올라온다. 소름이 돋는다. 마치 스릴러 영화의 시작처럼 이곳 저곳에서 이유없이 멧돼지들이 출몰하고 포획은 물론 수색조차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최근 전국적으로 도심지와 주택가에 멧돼지가 잇따라 출몰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동네 올팍에 엽사가 등장한 이유도 송파에 나타난 여섯마리의 멧돼지를 잡기 위해 구청에서 엽사 10명, 경찰 8명, 구청 직원까지 약 50명을 동원하고 사냥개도 9마리 투입했기 때문이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송파구에서는 올해 들어 멧돼지 출몰 신고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멧돼지 출원지로 남한산성을 주목한다. 잠실역과 직선거리로 10km 정도 떨어진 산성 일대 멧돼지 수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최근에는 시내까지도 내려오게 됐다는 분석이다.

 

이 야생 멧돼지들이 얼마나 굉장한지 광주에서도 며칠 전 100킬로가 넘는 멧돼지가 출몰해 실탄 열 발을 맞은 후에야 숨이 끊겼다고 한다. 여섯 발을 맞았을때는 다시 달려들기까지 했다니 만만치않은 녀석들임이 분명하다.

 

그나저나 이 녀석들은 왜 멀쩡한 산을 두고 시내로 내려오는 것일까? 먹이를 찾아서? 길을 잃어서? 새로운 땅을 개척이라도 할 작정인가? 정말 몹시 궁금해진다. 최신 뉴스를 검색하니 우리집 길 건너 중학교와 병원에서도 멧돼지가 발견되었다고하니 슬슬 겁도 난다. 멧돼지는 겁이 많아서 소리를 지르거나 뛰기 시작하면 위협을 느껴 공격할 수 있다는데 그럼 죽은척이라도 해야하는 걸까?

 

그날 나는 멧돼지 기사를 확인한 직후 알러지약에 취해 차안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는데 자는 사이 모기에게 무려 여덟방이나 물렸다. (요즘 멧돼지뿐 아니라 모기들도 기승) 오른쪽 무릎만 집중 공격을 당했는데 어찌나 가렵던지 긁느라고 정신이 팔려 멧돼지는 까맣게 잊을뻔했다. 오늘 남편이 다시 멧돼지 이야기를 꺼낸 후에야 다시 걱정하기 시작했다. 덩치가 작지도 않은데다가 한 마리도 아니고 무려 여섯마리인데 며칠째 수색조차 어렵다니 당장이라도 우리 놀이터나 지하 주차장에서 마주치게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제발 누가 돼지 좀 잡아주세요!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