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
11/11/19  

TV 화면에서 18세 소녀가 어머니에게 외치고 있었다. 나는 결혼을 해도 절대로 아이를 낳지 않을 거야. 드라마가 아니다. 엄마와 딸이 여행 중에 나누는 대화였다.

 

한국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이 처음 만들어진 2006년부터 10년 동안 150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미 선진국들이 경험한 문제지만, 한국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여성 출산율은 지난해 0.98명까지 추락하면서 통계작성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OECD 국가 중 최고이며, 출생아보다 사망자가 더 많아지기 때문에 올해부터 인구 감소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100년 뒤에는 한국의 인구가 현재의 절반 수준인 2,500만 명 수준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지난해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가장 위험한 적: 인구구조’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냈다. 이 기사에서 한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인구 감소라는 시한폭탄’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의 중위연령(전체 인구를 연령 순서대로 세웠을 때 정 중간에 있는 사람의 나이)은 1975년 19.6세에서 2015년 40.9세로 급등했으며, 이 같은 변화는 한국 경제에 ‘치명적’이라고 경고했다.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시킨 의학의 발달과 출산율 저하로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다. 저출산은 매우 복잡한 개인의 선택이므로 대응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고령화는 ‘정해진 미래’이기 때문에 대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세대 간 자원배분이다. 산업사회에 들어오며 연금을 통해 세대 간 부양을 제도화하고 자원배분 규칙을 만들었다. 현재 한국의 연금은 지속가능성 위기, 보장성 위기, 신뢰 위기 등 3중고(trilemma)의 악순환에 갇혀 있다. 고령화는 세대 간 부양비 악화를 의미하므로 ‘연금 개혁’을 통해 부양부담 과중에 따른 세대 간 갈등을 넘어 합리적인 자원배분에 대한 원칙을 마련함으로써 세대공생 연금을 지속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미혼인 20~30대 성인의 자녀 출산 계획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요인이 무엇인지 탐색해야 저출산과 관련된 심리적 이유가 파악될 것이다. 이외에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출발점으로서 ‘아버지 육아휴직 의무제’를 정착시킬 필요성도 제기된다.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중위소득의 50% 미만 소득자 비율)은 48.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 일하는 노인 가운데 단순 노무직 종사 비중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힘든 노후를 보내기 싫어서인지 노인 자살률도 OECD 회원국 최고 수준이다.

 

10년동안 150조 원을 쏟아부어도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퍼주기' 위주 대책을 만들고 있다. 과거 성장률이 높던 시절에 짜인 지원 대책이 1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고 관성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아이 한 명당 몇 만 원’식의 지원 대책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2013년부터 전면 도입된 무상보육도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2013~2040)에 따르면 지난해 3,683만 명이었던 15~64세 생산 가능인구는 계속 줄어들어 2040년에는 2,887만 명까지 감소할 전망이다. 생산 가능인구 감소로 인해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경제 역동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가 재정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상황에서 무조건 지원책만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살펴봐야 할 문제다. 정부가 제도 개선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기업들이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제도 시행에 소극적인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저출산·고령화가 한국의 경제·사회적 현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해결하기 쉽지 않다.

 

차라리 저출산·고령화를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국가 전체의 구조 개혁에 보다 힘써야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세계적으로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한 나라 가운데 하나인 독일은 인구 감소를 막기보다는 국민 전체의 삶을 질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며, 고용·연금개혁,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투자환경 개선, 복지 지출 효율성 제고 등을 통해 국가 성장과 국민 전체의 삶의 질 개선에 힘을 쏟아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의 문제해결을 위해 대한민국도 국민들의 삶을 질적으로 성장시키는 일에 주력함이 어떠할지 깊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