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어, 인정
05/04/18  

요즘 한국에서는 급식체라는 것이 유행이다. 급식체? 대체 무엇인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바로 검색에돌입했다. 급식체란 급식을 먹는 나이인 초, 중, 고교생이 주로 사용하는 은어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던 표현이 SNS를 통해 10대들 사이에서 퍼진 것이다. 단어의 초성만 사용하거나 (예: 인정을 줄여서“ㅇㅈ”), ‘지리다’, ‘오진다’, ‘~하는 부분’, ‘~하는 각’, ‘실화냐?’ 등의 표현이 대표적이며 자문자답을 하거나비슷한 발음의 단어를 나열하는 말장난과 같은 형태이다.  이제는 TV 방송이나 광고, 유명인들을 통해 20대는 물론 기성세대들에게까지 전파되고 있는 추세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큰 아이가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을 들으며 참 낯설게 느꼈는데 무슨 말끝마다 “인정?”이라고하면 상대방이 “어, 인정!” 이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말끝마다 반복되니 무슨 유행어쯤 되나보다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TV에서 개그맨들이 비슷한 언어들을 사용하며 이것을 급식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 청소년 10명중 7명은 급식체를 사용하고 10대들은 이 급식체만으로 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다. 청소년들이 급식체에 열광하는 것을 보며 우리말 속에 외래어, 비속어와 욕설 등 적절하지 않은 단어들이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이로 인해 언어 파괴가 일어난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잘못된 언어가 지속해서 노출되면 고유어가 사라지고 세대간의 거리가 더 벌어지고 소통이 단절된다는 입장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온라인으로 접한 급식체는 흡사 외국어를 읽는 것처럼 바로 이해하기가 힘든 수준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의 언어 문화 현상은 언어를 기성세대와 다른 자신들만의 개성으로 표현하고멋 부려 쓰려고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며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일종의 세대 문화이고 유행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자신들만의 언어를 통해서 유대감과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니 제대로 글을 읽고 쓸 수있으며 일상 생활에 불편을 겪지 않는다면 또래 집단끼리의 사용은 어느 정도 눈감아 주어도 되지 않을까싶다.

 

언어 유희와 유행어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내가 어릴 때도 개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이상한 언어와 표현들이 유행했었고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요즘 아이들은 이상하다며 그런 표현은 자주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며 염려하셨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때는 친한 친구들과 비밀 언어라는 것을 사용하기도 했다. 단어의각 글자 사이사이에  ㅂ을 추가해 말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가자”라고 말하고 싶으면 “가바자바”라고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긴 문장으로 빠르게 대화하면 외국어를 하는 것처럼 들려서 이 비밀 언어를 사용하지않는 사람들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표현들을 즐기던 그때 우리들도 어른이 되어서는 더 이상 그런 표현들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면 추억 속 단어나 유행어들을 소환해 배꼽빠지게 웃곤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는 사라진지 오래다.

 

나는 ㅋㅋㅋ (사람의 웃는 소리를 타자로 표현), 당근이지 (당연하지), 방가방가(인터넷상에서, 대화방에들어와서 반갑다는 의미로 하는 인사말), 하이루 (채팅 상에서 안녕하세요를 빗대어 쓴 말) 등이 유행했던찬란했던 나의 90년대를 떠올리며 언어 파괴인지 단순한 유행어인지 모를 급식체를 즐기는 요즘 아이들을 인정해 주려고 한다.

 

인정? 어,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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