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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인생
11/18/19  

한국 나이로 아홉 살인 셋째는 키가 많이 작다. 또래보다 좀 작은 정도가 아니고 두세 살 어린 동생들과 키가 비슷하다 보니 슬슬 걱정이 되어 얼마 전에 대형 병원에 데려가 검사도 받았다.  신장 정규 분포에서 3% 미만은 저신장으로 보고 성장주사를 맞도록 권하고 의료비 보험 적용도 가능하다는데 우리 아이도 해당된다고 했다. 현재 뼈 나이를 측정하니 만 네 살 반 정도라는 것이다.

 

그렇게 키가 작은 우리 셋째가 며칠 전 나에게 하소연을 토해냈다.

"엄마 엄마, 수영장 탈의실에서 만나는 할아버지가 있는데 그 할아버지가 자꾸 내 수영모자를 벗겨줘. 나는 빨리 벗으면 머리가 아프기 때문에 일부러 천천히 벗는 건데 할아버지가 확 벗겨버려서 오늘도 너무 아팠어."

"그래? 그 할아버지는 네가 잘 못해서 그러는 줄 알고 도와주시려고 그런가 보다."

"근데 한 번만 그러는 게 아니고 저번엔 내 바지도 벗겨주고 자꾸 몇 살이냐고, 작다고 밥 많이 먹으라 그러고."

"그럼, ‘도와주셔서 감사한데 제가 혼자 할 수 있어요.’라고 말씀드려. 그리고 자꾸 키 이야기를 하시면 ‘저는 밥도 많이 먹고 잠도 많이 자요. 제가 좀 늦게 크는 타입이래요.’라고 말씀드려.”

 

그러자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6학년 첫째는 다른 제안을 했다. 다음에 또 그 할아버지를 만나면 "할아버지는 몇 살이세요? 할아버지도 야채랑 비타민 좀 많이 드시고 젊어지세요. 왜 이렇게 늙었어요?" 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그래도 어른한테 그렇게 말하는 것은 버릇없는 것이라고 알려줬지만 대화를 마치고 가만 생각해보니 대체로 무례한 쪽은 아이가 아니고 어른들이다. 그러고보니 이런 이야기가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은 수시로 무례한 어른들에게 치이고 밀리며 점차 어른들을 피하는 방법을 터득해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자아가 있고 인격이 있다. 특히 키 작은 아홉 살의 자아는 매우 단단하나 유연하지는 못해 쉽게 꺾이고 부러진다. 남보다 키가 작다고 그동안 얼마나 숱하게 미취학 아동 취급을 당해왔겠는가? 가족, 친지, 친구, 선생님, 이웃들 정말 생판 모르는 지나가는 사람들마저 “밥 좀 많이 먹어야겠다.", "왜 그렇게 작아?", "잠 많이 안 자지?" 하는 소리를 얼마나 많이 해댔을까? (우리 아이는 정말 밥도 아주 잘 먹고 매일 밤 9시부터 취침하여 꼬박 10시간씩은 수면을 취합니다. 절대 안 먹고 안 자는 게 아니에요)

 

아무리 어린 아이라해도 낑낑 거리며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우선 "도움 필요하니?"라고 물어보는 것이 순서였을 것이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의 옷도 그렇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벗길 수 있을까? 요즘 애들 버릇없다고 혀를 끌끌 차기 전에 내가 혹시 무례한 어른은 아니었나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물론 탈의실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선한 의도와 연민을 갖고 아이를 챙기셨을 것이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으며 엄마로서 그분께 고마운 마음도 갖고 있다.)

 

아홉 살은 제법 세상을 느끼고 깨닫기 시작하는 나이다. 이제 구구단을 줄줄 외울 수 있으며 혼자 샤워도 하고 직접 옷을 찾아 입고 좋아하는 귤을 열 개씩 까먹을 수도 있다. 엄마가 시켜서 하는 일이긴 하지만 신발장 정리를 도맡아 하고 하루에도 서너 번씩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하며 집안 구성원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을 명확히 구분해내며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확실히 알지만 어차피 해야하는 것은 정해져 있다는 것도 이해한다.

나는 이런 아이가 가슴 벅찰 정도로 자랑스러우며 지금 이대로의 아홉 살 인생을 그 누구보다 축복하고 cherish한다. 키가 좀 작더라도 마음만큼은 커다란 사람으로 성장해 가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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