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홈으로 발행인 칼럼
No, That's not the way the story goes
11/25/19  

빗소리에 잠이 깼다. 얼마나 기다리던 비인가. 며칠 전 찾았던 마운틴 발디 초입의 샌안토니오 폭포의 옅은 물줄기를 보며 비가 좀 와야겠다 생각했는데 뜻이 하늘로 통했나 보다.

 

비는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유년시절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유리 빨래골에서 가든그로브 타운뉴스 사무실까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넘나들고 있었다. 나를 다시 현실로 소환한 건 전화벨 소리였다. Noel이다. 가끔 만나는 히스패닉계 친구다. 만나서 할 얘기가 있다며 언제 시간이 있는가 물었다. 지금도 괜찮다고 하자 라미라다의 한 커피집에서 보자고 했다.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커피집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도서관을 옮겨다 놓은 듯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랩탑을 들여다보며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근처에 대학이 있기는 하지만 이 작은 커피집까지 학생들이 찾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모자를 거꾸로(모자의 챙이 뒤로 가게) 쓴 젊은이가 환하게 웃으며 주문을 받는다. 종이컵을 보여주며 묻는다. 라지냐 미디움이냐.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한국인인가 물으니 '예'하고 공손하게 대답한다. 기분이 좋아졌다. 음악이 흘러나온다. 비틀즈, 젊은이에게 물었다. 이 노래를 누가 고른 것인가? 주방에서 나오는 한 젊은이를 가리킨다. 이제 스물이 되었을까 말까한 여학생이다. 찻집에 가득한 2019년의 젊은이들이 1960년대의 음악을 듣고 있다. 2019년의 공간이 1960년대의 음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친구가 오기 전까지 혼자를 즐기기로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멍청하게 창밖을 내다본다. 비는 그쳤지만 도시는 아직 젖어 있었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봤더라. 언제 이런 풍경 속에 앉아 있었나.

 

노래는 해리 닐슨으로 바뀌었다. 본래 영국의 배드핑거라는 그룹이 만들어 불렀던 노래를 해리 닐슨이 불러 더 유명해진 노래, 이렇게 젖은 날씨와 너무 잘 어울리는 노래다. 가슴속도 촉촉해지기 시작한다. 'That’s the way the story goes. You always smile but in your eyes your sorrow shows, yes, it shows.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애절한 사랑의 절규다.

 

친구가 나타났다. 그는 나를 다시 2019년으로 불러냈다. 내년 3월 라미라다시 의원 선거에 출마한다면서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했다. 지금 라미라다 시의원 5명 가운데 세 사람을 친구와 내가 지지했었다. 그들도 너를 지지하는가 물으니 세 사람 다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왜 그런가 물으니 ‘나를 지지하면 사람들이 그들을 지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친구가 그들이 출마했을 때 헌신적으로 도와주었음을 알고 있기에 다시 물었다. 그들이 왜 너를 지지하지 않는가? 여전히 모르겠다며 아마도 자기 외모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그는 멕시칸 원주민의 모습이다. 스페인 사람들의 피가 섞이지 않았거나 덜 섞였으며, 키가 작고 배가 불룩 나오고 얼굴은 크고 피부는 황갈색. 그리 호감 가는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다정한 사람이다. 또, 매사에 적극적이며 그동안 라미라다시의 지역정치인으로서 최선을 다해 왔다. 시에서 하는 각종 공청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서 시민들을 위한 정책이 채택되도록 애를 썼으며 자신의 일보다 공공의 이익이 되는 일에 앞장서왔다.

 

그가 지지했던 후보들이 시의원에 당선되고 나서는 친구를 외면했다. 그에게 시에서 봉사할 수 있는 자리를 권하지도 않았다. 무보수에 그저 봉사만 하는 그런 자리임에도 다른 사람들을 추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oel은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노래 가사의 한 구절이 계속 귓가에 맴돌고 있다. That’s the way the story goes. 직역하면 ‘얘기는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결국 이런 거다’, ‘인생이란 그런 거다’, 이런 의미이다. ‘That’s the way it is. 원래 그런 거예요.’ ‘That’s the way it’s supposed to be.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정치라는 것이 다 그런 모양이다. 국가의 일을 다루는 국회의원이든 동네일을 하는 로컬 정치인이든 의원에 당선되고 나면 자신의 자리 지키는 일에 열중하며 자신이 당선되도록 봉사한 사람들을 외면하게 되나 보다. 자기의 앞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등 돌리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친구를 택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나는 친구에게 지지를 약속했다. 꼭 당선되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친구와 헤어져 오는 길에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차창을 두들기는 빗방울이 노래한다. 'That’s the way the story goes 얘기는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 인생이란 것이 원래 그런 거 아닌가.' 내가 후렴을 바꿔 부른다. ‘No! That's not the way the story goes. 아니야, 원래 그런 건 아니야.’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