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사랑
11/25/19  

나와는 띠동갑인 우리집 막내 넷째는 이제 겨우 만 다섯 살이다. 첫째는 내년이면 중학교에 입학하는데 막내는 후년이나 되어야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니 그 생각만 하면 고구마 10개 먹은 듯 답답해지곤 한다. 하지만 넷째를 키워보니 막내는 영원한 막내요, 막내는 사랑 그 자체라는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다. 그야말로 막내는 이리 보아도 내사랑, 저리 보아도 내사랑~~~

 

우리집 첫째는 만 다섯에 자기 몸집보다 큰 가방을 메고 킨더도 다녔고 동생이 생긴 후로는 제법 의젓한 형 포스를 풍겼지만 막내는 여전히 우리집 베이비다. 아직도 가끔 반벙어리 소리를 내며 아기처럼 품에 파고 든다. 기분이 좋으면 “나는 이 다음에 커서 엄마랑 결혼할 거야.”라는 스윗 멘트를 날려주기도 한다. 첫째 때는 아이가 뭣도 모르고 그런 말을 하면 너는 엄마와 결혼 할 수 없다며 구구절절 불필요한 설명을 해댔는데 이제는 굳이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는 편이다.

 

우리 막내는 화장실 뒤처리도 혼자 못하는 처지지만 요즘엔 유치원에서 배워왔는지 <독도는 우리 땅>같은 노래도 그럴 듯하게 부른다. 제법 유창한 한국말로 노래 부르는 모습이 어찌나 신통하고 귀여운지 모른다. 막내는 세 살이 채 되기 전에 한국으로 왔는데 이제는 미국물이 쫙 빠진 오롯한 한국 아이가 되었다. 한국에서 어린이집부터 유치원까지 다니다 보니 배워 오는 영어도 완전 한국식이다. 형들이 영어로 만화 영화를 보고 있으면 잘 이해를 못해서 자꾸 재미없다며 엄마를 찾아온다. 귀찮기도 하지만 아직 엄마를 찾아주는 게 귀엽기도하고 반갑기도 하고 뭐 아무튼 그렇게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든다.

 

어느 날은 내게 물었다.

“엄마, 우리 비밀 알지?”

“으응? 무슨 비밀?”

“엄마 기억 안 나? 잊어버렸어??” 이미 몹시 실망한 표정이다.

“아니 뭐였더라…... 비밀이 여러 개니깐…...”

“엄마가 우리집에서 나 제일 좋아하는 거.”

“아~~ 그거? 그거 알지.”

“그걸 어떻게 잊어버려? 비밀 잊지마” 라며 그 이후에도 몇 번씩 더 확인하고 신신당부했다. 요즘도 가끔씩 내게 물으며 확인한다. 우리집에서 누굴 가장 사랑하는지, 누가 제일 귀여운지. 어차피 아이가 원하는 정답은 정해져 있고 나는 그 기대에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호응해준다.

 

하루는 너무 지치고 힘든 날이었다. 전날 교외로 놀러갔다가 이만 보쯤 걸은데다가 감기 기운까지 있어 몸이 으슬으슬했다. 침대에 누워있는데 막내가 귀여운 걸음걸이로 들어와서는 능숙하게 침대로 올라온다. 그리고 “엄마, 힘들어? 내가 마사지 해줄까?”하며 그 작은 손으로 마사지를 하는데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그 마사지를 받으며 나는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잠시 후 눈을 떴을 때 내 품에는 막내가 가장 아끼는 애착 인형 “워워”가 안겨있었다. 워워 얼굴에서 막내 향기가 났다.

 

아직도 막내에게서는 뭔가 막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아기 향기가 난다. 아기를 출산하고 키우는 것은 매번 뼈를 깍는 아픔과 고난의 시간들을 동반했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바로 이 향기였다. 하지만 내 경험상 이 향기는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이제 일년 반쯤 남은 건가……

 

막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해가 2027년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고 아찔해지지만 또 한편으로는 막내가 너무 빨리 커버리는 것이 몹시 아쉽고 슬프다. 하지만 우리 시어머니를 보니 막내는 역시 영원한 막내라는 말이 맞다. 나이 마흔 넘어 애를 넷이나 둔 아들을 바라보는 눈빛에 사랑이 가득하다. 뭐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한마디하면 꺄르르 넘어가시며 제대로 리액션을 해주신다.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요구가 많아도 귀찮은 내색 없이 신이 나서 몸을 움직이신다. 나라고 어찌 다르겠는가…… 막내는 사랑인 것을……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