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누가 많이 먹나
12/09/19  

11월 초에 옛 동네 친구들과 만났다. 나이는 비슷하지만 중국, 일본 등 동양계, 백인, 히스패닉, 인종은 다양하다.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살지만 한 때는 한 동네에 살았던 친구들이다.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다 먼저 세상을 떠난 두 사람 이야기 나왔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건강으로 옮겨졌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누가 가장 약을 많이 먹는가’ 내기를 하자고 했다. 자기가 일등할 거라면서. 그 친구는 하루 일곱 개의 약을 먹는다고 했다. 그러자 여섯, 다섯, 넷, 셋....... 그리고 마지막 남은 친구가 한 개라고 했다.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내기에 꼴등을 해서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 약을 복용하지 않고 있다고 하자 친구들이 모두 놀라는 표정이었다. 한 친구가 말했다. “혈압약도 안 먹어?”

 

사실 의사가 혈압약을 복용하라고 한 지 10년 가까이 된다. 그러나 아직 복용하지 않고 있다. 의사가 변비약을 처방해준 적도 있었지만 처방전을 그대로 휴지통에 버렸다. 치과에서 준 진통제를 비롯해 그 어떤 약도 복용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버티어 왔다.

 

그날 저녁 어디 아픈 데가 없는지 가만히 생각해봤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그동안 계속 아파왔으나 통증을 참으며 살아왔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 나도 아픈 거다. 병원 예약을 했다. 12월 2일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만일 더 빨리 가능하다면 당겨보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문자가 왔다. 11월 27일 올 수 있느냐고. 무조건 가능하다고 했다.

 

병원에 갔다. 일 년 만이다. 의사의 진찰을 도와주기 위해 내 몸의 상태를 기록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작년에 작성했던 기록을 참조하라고 주었다. 그 기록에 의하면 모든 상태가 ‘엑설런트’라고 되어 있었다. 불과 일 년 전인데 그때는 좋았구나. 내가 내 손으로 작성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병원에서는 혈압부터 잰다. 152/100, 약간 높은 편이라고 했다. 의사는 언제부터 온몸이 쑤시고 아프기 시작했는지 물었다. 약 10개월쯤 되었다고 했다. 그러자 왜 병원에 이제 왔는가 물었다. 그동안 한의원에서 침도 맞고 척추병원에 다녔다고 했다. 여러 가지 증세를 기록해온 것을 들고 내가 말하면 의사가 음성으로 기록했다. 아픈 증상에 대해서 계속 얘기하고 있는데 의사가 중단시켰다. 그러면서 일단 손가락 엑스레이를 찍고, 대변검사를 하고, 혈액검사를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결과는 3주 후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왜 그렇게 오래 걸리냐’고 물으니 '통증이 시작한지 10개월이나 지나서야 병원에 온 사람이 3주를 못 기다리냐'고 농담처럼 얘기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내 증상에 대해 다 얘기하지 못했다고 하자 문밖으로 나가던 의사가 말했다. 원래 한 환자에게 20분 정도 제한되어 있다며 나머지는 다음에 만날 때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온 김에 독감과 폐렴 예방주사를 맞겠냐고 물었다.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주사를 놓기 전에 간호사가 혈압을 한 번 더 재겠다고 했다. 132/90.

 

독감은 왼쪽, 폐렴은 오른쪽 팔뚝에 맞았다. 주사를 맞는데 왼쪽은 괜찮은데 오른쪽은 많이 아팠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다음날(추수감사절) 문밖을 나가지 못하고 끙끙 앓았다. 온몸이 쑤시고 아픈 것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참다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들이 예전에 사다 둔 진통제를 한 알 먹었다. 그리고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의료보험에 가입할 때 주치의를 한국인 의사로 했었다. 가입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전화로 예약을 하려하니 내년 1월에나 의사 면담이 가능하다고 했다. 의사를 만나는데 4개월 후에나 가능하다니. 바로 빠르게 예약 가능한 의사로 바꿨다. 이렇게 해서 만난 사람이 지금의 주치의 중국인 여의사이다. 그는 가운을 입고 다니지 않는다. 지금까지 세 번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평상복-셔츠에 바지-을 입고 흰 가운을 입지 않았다. 그 병원은 간호사들도 평상복 차림인 사람들이 더러 눈에 띈다. 환자와 의료인들의 거리감을 두지 않기 위함인지 모르지만 간호사나 의사들은 가운을 입어야하지 않을까.

 

한국 방문길에 동네 병원에 간 적이 있다. 간호사들은 물론 의사들도 친절했다. 의료보험이 되지 않아 진료비가 비싸다며 미안해하기까지 했다. 이곳에서 병원 방문할 때마다 내는 코페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돈을 청구하면서 말이다. 이곳의 시스템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는데 어찌 할 방도가 없다. 이곳 시스템에 맞춰 사는 수밖에.

 

검사 결과를 3주씩이나 기다려야 하냐고 물을 때 의사가 말했다. 큰 문제가 있으면 곧 연락을 하지만 대단치 않으면 3주 후에나 연락할 거라고 했다. 아직 연락이 없는 것으로 보아 큰 이상은 없는 거라고 안도하고 있다.

 

과연 다음에 옛 동네 친구들을 만나 누가 약을 많이 먹나 내기해도 꼴찌를 할 수 있을까?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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