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덜팅(adulting)
12/16/19  

 

최근 'adulting'이라는 강좌를 개설하고 있는 미국 대학들이 늘고 있다. UC버클리에서 시작한 이 강좌는 개설 당시에는 30명 정원의 한 강좌만 열렸으나 차츰 학생들이 몰리면서 현재는 두 강좌에, 강좌당 수강생도 200명이 넘을 정도로 학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자 다른 대학들도 앞 다투어 'adulting' 강좌 개설에 나서고 있다.

 

어덜팅(adulting)은 adult(성인)에 '~ing'를 붙여 만든 단어이다. '어덜팅'은 3~4년 전부터 웹사이트 등에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2016년에는 옥스퍼드 사전에서 올해의 단어 후보로 선정되기도 할 정도로 관심을 모은 말이다. ‘어덜팅’은 문자 그대로 성인답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여기에는 성인으로서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세상살이에 꼭 필요한 일들을 성취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즉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제 한 몸 오롯이 홀로 서는 행동을 ‘어덜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덜팅’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 우리말로는 '철이 든다'가 있다. '철이 들었다'라는 말은 '사물의 이치를 분별할 줄 아는 힘이나 능력이 있다'는 뜻이니까 '어덜팅'이 지니고 있는 의미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렇게 본다면 ‘어덜팅 강좌’를 우리말로 옮기면 ‘철들(나)기 강좌’ 정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덜팅 강좌는 어떤 내용들로 구성이 되어 있을까?

 

세금신고 방법, 음식 만들기, 집수리하기 등을 비롯해 가족 관계, 집안 살림, 직장 생활, 재정 관리, 연애, 위기 상황 대처 등이 이 강좌의 주요 내용들이다. 결국 이 강좌는 부모 의존에서 벗어나 독립된 성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제반 사항을 가르쳐주기 위한 목적으로 개설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성인이 되는 법을 교실에서 배울 수 없었다. 성인이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아무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다. 부모와 선생님, 우리가 만나고 접하는 어른들, 혹은 책속의 인물들 중에 내가 닮고 싶은 사람들을 흉내 내면서 살다 보니 어느새 성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배우지 않고 스스로 터득해야 했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을 수밖에 없었고 또 성인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까지 걸린 시간도 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성인의 일반적인 기준, 즉 결혼을 했다고, 나이가 많다고, 부모로부터 독립해 산다고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성인으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인다운 마음가짐과 행동이 드러나야 한다. 물론 어떤 행동이든 ‘반드시’ 혹은 ‘절대’라는 기준이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보편적인 기준은 있게 마련이다. 이 보편성에 근거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가 많다고 성인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물론 일정한 나이 이상이 되면 법적으로는 성인임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나이에 따라 성인으로서의 면모가 갖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철이 들어야 진정한 성인이 된다는 말이다. 철은 세월이 흐르면 저절로 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겉모습은 성인이지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은 전혀 성인답지 않은 사람들도 제법 많은 것을 보면 세월이 철을 선물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대학들이 어덜팅 강좌를 개설하는 까닭은 앞에서 이야기한 부모 의존에서 벗어나 독립된 성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제반 사항을 가르쳐주기 위한 목적과 함께 또 다른 곳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도 있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은 비록 법적으로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생각이나 행동에 미숙한 면모를 떨쳐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대학에서 습득한 지식만으로는 사회에 나가 성인으로서의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인이 되었지만 성인답지 못한 생각과 행동을 보이는 밀레니얼 세대의 문제를 전적으로 그들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그들이 하는 생각과 행동의 상당 부분은 베이비붐 세대인 부모들이 만들어 낸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자식들이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알아야하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들을 부모가 대신해주다 보니 결국 자식들은 신체가 성숙해지고, 법적으로도 성년이라는 물리적 요건을 갖추었지만 정신적 측면에서는 성인으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성인이지만 성인답지 않은 기형적 성인을 길러낸 측면이 있는 것이다.

 

성인은 스스로 되기도 하지만 만들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성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의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내 자식이 힘들까봐, 다른 집 아이들보다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자식의 일을 대신해 주기 전에 그것이 진정으로 부모가 해야 할 일인가부터 생각해보아야 한다. ‘어덜팅’ 강좌는 대학이 아닌 가정에서 개설해야 한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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