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류 포노 사피엔스
12/23/19  

대선배들과 점심을 함께했다. 한 분은 여든세 살, 다른 한 분은 여든여섯이다.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 한 선배가 스마트폰을 내밀며 당신 자녀들과 손주들 사진을 보여주었다. “형님, 스마트폰을 잘 활용하십니다.”라고 하니 자동차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라 구글맵을 많이 활용하고 호텔 등을 찾기 위해 트립어드바이저를 주로 이용한다고 했다. 그러자 다른 한 분도 지난번에 자동차를 타고 멕시코 여행을 20여일 하고 왔다며, 트립어드바이저 덕을 단단히 봤다고 했다. 여든이 넘은 분들이 스마트폰을 젊은이들 못지않게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커다란 급변화의 시대 한가운데 들어서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등 떠밀려 들어온 것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다보니 그 한복판에 와 있는 것이다. 이름하여 4차 산업혁명의 시대. 4차 산업혁명하면 인공지능, 5G, 자율주행차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혁명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스마트폰 등장 이후 완전히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오늘날 우리들의 삶의 변화에 가장 큰 원인은 2010년경 등장한 스마트폰이라는 얘기다.

 

이 스마트폰에 의해 새로 탄생한 인간 종족을 우리는 ‘포노 사피엔스’라고 부른다. 현생 인류를 가리키는 호모 사피엔스는 인간 종족을 뜻하는 ‘호모(Homo)’에 슬기롭다는 뜻의 ‘사피엔스(Sapiens)’를 접목해 만든 단어다. 스마트폰을 뜻하는 ‘포노(Phono)’에 슬기로운 인간 종족을 붙이면 ‘호모 포노 사피엔스’가 된다. 이 말을 줄여서 포노 사피엔스라고 부른다.

 

심지어 스마트폰이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장기(臟器)와 다름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망치나 톱 같은 도구는 사용할 때 쓰고 내려놓으면 되기 때문에 인체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스마트폰을 24시간 들고 다니면서 생각의 체계, 습관, 소비의 패턴, 정보 흡수 방식 등 모든 것이 바뀌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의 장기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 어느 설문조사에서 저녁 7시 이후에 어떤 영상을 보냐고 물었다. 1,000명에게 연령대별로 나눠서 물었더니, 57%가 유튜브를 본다고 대답했다. TV 27%, 그 다음이 넷플릭스. 완전히 문명이 바뀐 거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40대 이상은 그래도 여전히 TV를 많이 본다. 1982년부터 1995년생까지 해당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1996년 이후 태어난 Z세대가 포노 사피엔스의 주역들이다. 이들을 고객으로 삼아야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

 

포노 사피엔스는 드라마를 보려고 할 때 TV를 켜는 게 아니라 폰을 연다. 돈을 송금할 때도 은행으로 가지 않고 스마트폰을 연다. 뇌 구조가 바뀐 거다. 밀레니얼 세대, Z세대는 어려서부터 인터넷과 컴퓨터와 함께 생활해 왔기 때문에 그 속에서 살았고 그 문명이 습관화 되었고, 뼛속까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문명이 녹아 있다. 스마트폰이 신체의 한 부분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과거 인터넷이 PC에 머물 때는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손에 들고 다닐 수 있어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모든 서비스를 이것을 통해서 해결하게 되었다. 인간의 생활이 혁명적으로 달라진 것이다.

 

요즈음 우리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누구에게 물어 보는가? 부모? 형제자매? 친구? 스마트폰에서 모든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모든 인류의 지적 능력이 크게 확대되었다. 검색할 수 있는 건 뭐든지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뇌가 달라진 것이다. 또 커뮤니케이션할 때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거나 전화로 대화하는 경우가 많은가? 아니면 스마트폰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 교류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커뮤니케이션 역량에도 엄청난 변화가 왔다. 따라서 인류의 모든 생활 습관에 변화가 빨리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건 지능과 언어인데, 이 지능과 언어가 스마트폰을 통해서 지배받게 된 것이다. 즉 스마트폰이 예전과는 전혀 다른 엄청난 삶의 변화를 가지고 왔다.

 

80대 선배들이 스마트폰에서 정보를 얻고 구글맵을 보면서 여행을 다닌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4차 산업혁명의 시대 한복판에 있다. 싫든 좋든 스마트폰은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었다. 스마트폰을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인간의 장기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과연 앞으로 도래할 제 5차 산업혁명은 어떤 식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지켜 볼 일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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