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홈으로 발행인 칼럼
왜 히말라야를 찾는가
01/27/20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에 나섰던 한인 4명과 현지 가이드 2명이 실종되었다. 함께 트래킹에 나섰던 또 다른 한인 5명은 눈사태 광경을 목격하고 긴급히 대피해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 한인 트래킹팀 외에 다른 팀의 가이드 한 명도 실종되었으니 눈사태로 인한 실제 조난자는 모두 7명이다.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네팔 특수부대 장병들이 투입되고, 특수훈련을 받은 구조견, 각종 장비 등이 동원됐다. 하지만 기상악화와 계속되는 눈사태 등으로 단 한 사람도 구조하지 못하고 24일 구조팀은 모두 철수했다.

 

실종자들은 시누와(2340m)에서 1박을 하고 히말라야 롯지를 지나 데우랄리로 향하던 도중 내리던 비가 폭설로 바뀌는 등 기상이 악화되어 하산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도 3년 전 이맘 때, 똑 같은 곳을 걷고 있었다.

 

기록해 두었던 것을 살펴보니 그날은 일정이 빡빡했다. 히말라야 롯지(2920m)에서 출발해 힌쿠 동굴(3100m)을 지나 데우랄리(3230m)를 거쳐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3700m, MBC)에서 점심식사하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 ABC)까지의 여정이었다. 인솔자는 출발 전에 일행의 산행 속도와 건강 상태에 따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오르지 않고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서 묵을 수도 있다고 했다.

 

히말라야 롯지에서 힌쿠동굴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힌쿠동굴에서 데우랄리까지는 가벼운 오르막이다. 1시간 남짓 걸렸다. 데우랄리에서 MBC까지는 오르막길을 따라 몇 개의 작은 고개를 넘어야 했다. 2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MBC에서 3시간 정도를 더 걸어 ABC에 도착 했다. 그날 우리는 3000m-4000m의 고산지대를 8시간 동안 걸었다.

 

트래킹 도중 우리 일행을 인솔했던 가이드들은 산(눈)사태의 위험이 있다며 산기슭을 피해 아랫길을 따라 한참 걷다가 얕은 내를 건너도록 했다. 시간상으로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더 걸리는 길이었음에도 가이드들은 안전을 위해 더 많이 걷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ABC에서 자고 하산하던 다음날, 필자는 일행과 떨어져 다른 팀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산기슭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다행히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행은 올라 갈 때와 같은 길로 다시 한참을 돌아 내려왔다.

 

뉴스를 전하던 아나운서가 말했다. 사고 지역이 포함된 히말라야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는 초등학생도 걸을 수 있을 만큼 아주 쉬운 코스라고. 물론 히말라야의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전문 산악인이 아니라도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도전할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이다. 하지만 해발 3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라 고산병에 노출될 수 있고 기상이 급변해 재해를 당할 위험도 높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한다 해도 예측하지 못했던 눈보라와 같은 기상이변에 대처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더구나 갑작스런 눈사태라면 대처 방법이 없다. 엄홍길 대장이라도 급작스레 눈사태를 만난다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눈사태와 같은 재난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재난의 위험에 노출된 지역을 피해 가는 방법뿐이다.

 

히말라야의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이렇게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때문에 트레킹 도중 필자가 일행과 떨어져 걸을 때마다 가이드 한 명이 꼭 나와 동행했다. 우리 일행 20명 외에도 짐을 운반하는 포터 16명, 취사팀 9명, 가이드 4명, 가이드 대장 1명 등 총 30명이 우리와 함께 움직였다. 가끔 가이드 없이 혼자 걷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가이드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때는 두 명의 가이드가 나와 함께 걷기도 했다. 한 명은 내 배낭을 대신 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산에 오르는 것이 힘들고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산에 오르려고 한다. 단지 높이 올라가는 것이 목표라면 헬기를 이용하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고통을 참아가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올라간다.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또 산을 찾는다.

 

히말라야에 다녀온 후 몇몇 단체로부터 경험담을 들려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결론으로 해줄 말이 "절대로 가지 마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히말라야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는 말이 생겨날 만큼 히말라야를 한 번 경험하면 좀처럼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이 필자도 안나푸르나에 이어 그 다음해에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300미터)에 다녀왔고, 지금은 또 다른 히말라야를 꿈꾸고 있으니 말이다.

 

연초에 타운뉴스를 방문했던 외국인 친구가 내게 물었다. “왜 산에 오르는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I don’t know.”

 

조난자들 전원의 무사 귀환을 간절히 기원한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