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홈으로 발행인 칼럼
굿바이 코비
02/03/20  

설날 아침, 친구와 바닷가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산책을 했다.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는 중한 병에 걸려 2년여의 투병생활을 거쳐 완쾌 판정을 받고 일상으로 돌아와 2018년 직장에도 복귀했다. 오히려 전보다 더 건강해진 듯 했다.

 

작년(2019) 11월 친구와 한국 가수들의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약속한 날 친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잘 걷지 못했다. 지팡이를 짚고도 걸음이 많이 불편해 보였다. 한 걸음 움직이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도저히 3시간여를 자동차를 타고 가서 1시간 30분가량 공연을 보고 돌아온다는 것이 무리라고 느껴졌다.

 

친구는 공연을 보러 갈 수 있다고 우겼지만 극구 만류해서 저녁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친구를 다시 만난 것은 타운뉴스 시무식 날(1월 2일)이었다. 친구가 떡을 한 시루 들고 나타났다. 깜짝 놀랐다. 걸음걸이가 불편했던 친구가 언제 아팠냐는 듯이 씩씩한 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서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타운뉴스 시무식에 떡을 손수 해 갖고 왔다.

 

그리고 설날(1월 25일) 아침 Laguna Beach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걸었다. 언제 아팠냐는 듯이 친구는 씩씩했고 걸음걸이도 당당했다. 우리는 예전처럼 웃고 떠들며 바닷가를 걸었다. 만난 김에 아예 점심식사까지 하자고 해서 Irvine으로 달려가 새우튀김에 돈가스까지 먹었다.

 

또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친구를 축복하며 기쁜 마음으로 설날을 보내고 맞이한 다음날 일요일 아침, 산책하던 중 공원 야구장에서 어린 학생들의 야구경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갑자기 관중석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보스턴에 사는 아들이었다. "아빠, 코비가 세상을 떠났어." 깜짝 놀랐다. "아니 그럴 리가" 아들이 계속 말하고 있었다. 코비가 타고 있던 헬리콥터가 추락했으며 탑승자 전원이 숨졌다며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아들은 울먹이고 있었다.

 

코비는 아들의 우상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농구를 시작한 아들은 코비의 경기를 빼놓지 않고 봤다. 그의 경기를 보면서 슛, 드리볼, 패스를 익혔고 방과후 체육관에서 살았다. 그를 흉내 내면서 초·증·고등학교 시절을 농구 선수로 활약했으며, 농구 특기자로 대학으로 진학해 선수생활을 계속했다. 대학 졸업 후에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퇴근 후에는 농구를 즐기며 살고 있다. 아들에게 평생 농구와 인연을 갖게 해준 바로 그 코비가 세상을 떠났다. 아들은 슬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뉴스를 클릭했다. 미국프로농구, NBA 스타인 코비 브라이언트가 헬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26일 아침 브라이언트는 전용 헬리콥터를 타고 가던 중 캘리포니아주 칼라바사스에서 헬기가 추락하면서 숨졌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1996년부터 2016년 은퇴할 때까지 20년간 줄곧 LA 레이커스에서 뛰면서 팀을 5번 NBA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는 18번 올스타팀에 선발됐고 두 시즌 득점왕에 올랐으며, 2008년 정규리그 MVP, 2009년과 2010년 플레이오프 MVP, 올스타 MVP 4회 수상 등의 기록을 남겼다.

 

집에 돌아와 TV를 켜니 온통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송들이었다. 농구경기장은 물론 축구장에서도, 골프경기 도중에도, 심지어 코비와 전혀 관계가 없는 그래미상 수상식에서도 그를 애도하는 노래를 부르고 추모하는 분위기였다.

 

참사 다음날에도 신문, 방송은 물론 온 세상이 그의 갑자스런 죽음을 애도하는 분위기였다. 후속 보도에 의하면 헬리콥터에는 코비와 그의 둘째딸 지아나(13세), 코비의 20년 지기 친구 코스타메사 소재 오렌지코스트 칼리지 야구부 감독 존 알토벨리와 그의 아내 케리, 딸 알리샤, OC 세인트마가렛 주교학교 이사인 사라 체스터와 그녀의 딸, 지아나의 농구 코치였던 크리스티나 마우저, 그리고 조종사 아라 자바얀이 탑승하고 있었다. 코비의 딸, 지아나, 알리샤, 사라 체스터의 딸 등은 코비가 세운 맘마 아카데미에 함께 다니고 있었으며, 이날 농구 경기에 참가하러 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 Kobe Bryant는 짧지만 매우 Brilliant한 인생을 살다 갔다. 코비를 비롯해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어제는 몇 해를 병마와 싸우며 죽음의 희끗희끗한 그림자를 잘라내며 삶의 의욕을 갖고 이겨낸 친구를 보면서 기뻐했는데, 오늘은 건강한, 그리고 죽음과는 거리가 먼 생에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 마흔 한 살의 코비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냉엄한 현실이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으며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아무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들 모두에게 지금이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Carpe diem!’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