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침해하는 바이러스 공포
02/10/20  

출근길 지하철 안의 풍경은 평소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올겨울 들어 가장 매서운 추위가 찾아온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몇 주 전부터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지하철 안의 승객 중 70% 이상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바이러스 영화의 한 장면같이 어디서 기침 소리만 들려도 심상치 않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그 어느때보다 갈팡질팡 불안한 이곳은 2020년, 서울이다.

 

그러고 보면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 잊어버릴 만하면 낯선 이름을 가진 새로운 병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지금 몇 주째 한국은 중국 우한에서 온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혼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병은 감염자의 침이 호흡기나 눈·코·입의 점막으로 침투될 때 전염되고 감염되면 잠복기를 거친 뒤 발열, 기침이나 호흡 곤란, 폐렴이 주 증상으로 나타나고 심하면 사망까지 일으킬 수 있는 무서운 병이다. 중국에서만 이미 6백여 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그러다 보니 전세계가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외출을 자제하면서도 그나마 우리 동네에서 활동하는 것만큼은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며칠 전 내가 사는 동네에서 멀지않은 곳에서 확진자가 나오면서 주변이 발칵 뒤집혔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종업식과 봄방학을 앞당겼고 졸업식은 아예 취소되었다. 막내가 다니는 유치원은 휴원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가정에서 자율적으로 등원을 시키라고 권고하였다.  2월 중순으로 잡혀 있었던 졸업식과 발표회도 학부모 참석없이 아이들끼리만 진행하겠다고 한다. 

 

바이러스 때문에 평생에 있어 소중하게 기억될 순간들을 빼앗기고 있는 것만 같아 속상하고 억울하지만 안전을 지키는 일에는 지나친 법이 없기에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가 그동안 누렸던 평범한 일상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크나큰 축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기회도 되었다. 또 매일매일 순간순간이 온통 감사할 일들 투성이었다는 것도 인정하게 되었다.

 

약국이며 마트며 죄다 품절된 마스크 한 장이라도 더 구해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과 달리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은 하루 하루를 살아내야 한다. 그렇다.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들도 감염에 대한 극심한 공포에도 불구하고 모두 바쁘게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자칫 감염될 수도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 방문 닫고 집에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우리는 그저 매 순간 선택을 하는 기로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고를 뿐이고 부디 그 선택이 잘못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빨리 이 답답함과 공포로부터 벗어나야 할 텐데 확진자가 늘어갈 때마다 깊은 탄식이 나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우리 나라는 사망자에 이르는 사례가 없었다는 것이다. 부디 그저 며칠 앓고 지나가는 감기 수준으로 지나가 주길 바랄 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위협받는 우리 모두의 일상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기를 바라고 하루 속히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마음 편히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