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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02/17/20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머리가 어딘가에 닿기만 하면 잠들어버리는 Automatic Sleeping Machine으로 자부하는 내가 쉽게 자지 못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다. 나는 하루 이틀 지나면 도로 원래의 기능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기다렸으나 사흘 나흘 닷새가 지나도 여전하다.

 

지난 9일 LA 할리우드 돌비 극장(Dolby Theater)에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상 후보로 올랐다는데 수상식에 참석은 못할망정 어찌 TV시청을 마다한단 말인가.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국제 장편 영화상이나 각본상 정도를 수상하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한국영화 최초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 영화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하며 올해 아카데미 최다 수상을 기록했다.

 

첫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은 감격과 감동 때문이었다. 한국 영화가 세계적인 영화들과 경쟁해서 당당하게 4개 부분을 석권했다는 그 기쁨은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TV화면에서 캡처한 사진들을 여기 저기 옮겼다. 친구들에게도 보내고 SNS에도 올리며 대한민국의 쾌거라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기뻐했다. 그런데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도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잠들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히 감동 때문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해 11월, 선배로부터 서부영화 100편 이상이 담긴 USB 메모리를 선물 받았다. 그 속에 '기생충'이 담겨 있었다. 옮기는 이의 실수 아니냐고 선배에게 물었더니 그 영화가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라 특별히 배려한 것이라고 했다. 기생충하면 어릴 때 기생충 검사를 위한 채변 봉투가 연상되고 어디선가 본 회충 덩어리가 떠올라 별로 보고 싶지 않았으나 칸영화제에서 상까지 받은 작품이라고 하니 도대체 어떤 영화인가 궁금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나서는 불쾌한 기분이 되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괴기영화를 본 느낌이랄까?

 

그리고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한국영화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고 세계가 떠들썩하니까 덩달아 어깨까지 으쓱거리며 시상식을 보게 되었고, 4개 부문에서 수상하고 나니 기분까지 좋아졌으나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받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끔찍한 영화가 세계 최고의 영화제에서 상을 네 개씩이나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래서 다시 보기로 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커다란 TV화면으로 두 눈을 부릅뜨고 그 영화를 다시 보았다. 마지막 장면까지 다 보고나서도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 영화, 봉준호의 '기생충'이 오스카상을 네 개 부문에서 받아야 했는지. 나의 이런 생각과 달리 세계의 모든 언론들은 찬사를 쏟아붓고 있다. 언론뿐만이 아니다. 영화 관계자들, 관계기관 전 세계의 모든 영화 관련사업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모든 면에서 잘 만든 영화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단지 그에 못지않게 잘 만든, 아니면 더 잘 만든 영화들이 후보작으로 대거 올라 왔는데 어떻게 기생충이 올해 4관왕이 되었을까?

 

첫째 예술은 돈으로 한다. '기생충' 제작비가 150 억이 넘는다. 그 외 해외 캠페인, 아카데미 캠페인 등 광고 및 홍보에 쏟아 부은 돈은 천문학적이다. 한국 CJ 에서 후원하며 밀어붙였기에 가능했다. 돈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빈부격차를 비판한 영화의 제작자 및 영화 관계자들은 한국의 부자, 귀족 계급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이다.

 

둘째, 큰일을 이루려면 운이 따라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격과 위상이 본 궤도에 올랐다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봉 감독이 큰 수혜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봉 감독의 재능과 노력도 대단했다. 준비된 자가 운을 만난 케이스라고 하겠다. 봉 감독은 영화 산업계의 생리를 꿰뚫어 보고 10년 앞을 내다보면서 전략적으로 준비해왔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아무리 그가 실력이 있어도 시대적 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헛수고에 지나지 않았을 거다.

 

셋째, 아카데미상은 정치다. 아카데미상을 쥐고 흔드는 할리우드는 좌편향 영화인들의 집합지이다. 기생충은 그들 취향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영화다. 봉 감독의 영화는 항상 진보를 표방하고 기존 정치, 사회질서를 비판하는 색채가 짙었다. 그런 봉 감독의 경력이 아카데미상 수상에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넷째, 커뮤니케이션 파워다. 봉 감독의 통역을 맡았던 샤론 최가 큰 역할을 했다. 동영상으로 봤는데 정말 멋지게 통역을 하고 있었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언어 장벽을 허물어뜨린 것도 커다란 힘으로 작용했음에 틀림없다.

 

봉준호의 ‘기생충’, 분명히 잘 만들어진 영화다. 단지 다른 후보작들과의 경쟁에서 4관왕에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보이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많은 투자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빈부 격차를 고발하는 영화를 만들었지만 이 영화는 제작부터 홍보, 광고에서 아카데미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가진 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오늘 밤부터는 자동수면기가 편안하게 제 기능을 발휘할 것으로 믿는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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