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의 유혹
02/24/20  

금요일마다 담배를 피운다. 금요일은 다음 월요일에 발행되는 타운뉴스의 마감일이다. 금요일 점심시간, 직원들이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가면 으레 따라 나가 담배를 피운다. 서너 모금 빨면 다리에 힘이 풀리고 어지럽다. 바로 이 맛을 즐기는 것이다. 담배도 중독성 마약임에 틀림없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빼놓지 않고 금요일마다 하나의 의식처럼 담배를 피운다.

 

한국에 가면 중고교 동창생 12명이 모인다. 그 중에 딱 한 친구가 아직도 담배를 피운다. 이 친구는 학창시절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던 친구다. 명륜동 친구집에서 담배를 피울 때 친구는 부모님 눈에 띄지 않도록 망을 봤었다. 수학선생으로 평생 근무하다가 은퇴한 후 강남의 한 빌딩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다. 식당에서 식사하다가 슬쩍 일어서는 친구를 따라 나가 한 대씩 피우며 친구와 나만 공유하고 있는 옛 추억을 꺼내 웃음꽃을 피우며 이야기한다.

 

똑같은 식으로 언제 어디서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을 따라 나가 담배를 피운다. 평소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건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지만 누군가가 피우려고 하면 따라 나선다. 과연 나는 흡연자인가 비흡연자인가? 여기에 대한 해답을 병원에서 알게 되었다.

 

처음 병원에 가면 종이를 몇 장을 주면서 자신에 관한 기록을 하도록 한다. 성명, 생년월일, 주소, 연락전화번호로 시작해서 자신의 병력, 가족들의 병력 등을 기록하게 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가를 묻는다. 몇 해 전, 병원에 갔을 때 나는 흡연자란에 동그라미 쳤다. 그 다음 얼마나 자주 피우냐는 질문에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의사는 제출한 서류를 앞에 두고 나와 직접 면담을 하면서 나를 비흡연자라고 기록했다. 분명히 일주일에 한 개비 피운다고 썼음에도. 이는 일주일에 한 개비 피우는 사람은 비흡연자에 해당한다는 의미 아닌가. 그날 이후로 나는 비흡연자구나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2020년 02월 20일 오후 2시, 흡연자가 되었다. 먼저 다니던 병원 주치의가 외국인이다 보니까 여러모로 불편해서 한국인 주치의로 바꾸기로 하고 병원을 찾았다. 초진환자로서 나에 대해 기록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흡연한다고 기록했다.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내 기록을 보면서 의사의 첫 마디가 “담배를 끊으시죠”였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먼저 다니던 병원에서 똑같이 일주일에 한 번 피운다고 썼는데 비흡연자라고 기록했다고 하자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피우면 흡연이라고 했다. 흡연자가 되는 순간 시계를 들여다보니 2020년 02월 20일 오후 2시였다.

 

흡연자면 어떻고 비흡연자면 어떤가? 그 어떻게 규정하더라도 내가 일주일에 한 대씩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어떤 모임에서건 담배 피우려는 사람이 있으면 따라 나가 피울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떠오른다. 1929년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작품. 담배파이프 하나를 그려놓고 밑에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는 프랑스어 문장이 쓰여진 그림이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라니, 그럼 이건 실제 파이프가 아닌 그림이란 것인가?’ ‘초현실주의가 어쩌고 저쩌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난무하다.

 

그러나 이것은 르네 마그리트의 기법일 뿐이다. 그림을 접하면서 관람객이 느끼는 당혹감을 증폭시켜, '파이프를 파이프라 하지 못하는’, ‘파이프를 파이프라 부르지 못하도록 하는' 언어와 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모순된 어법을 사용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수많은 해석이 난무하나 그가 파이프를 그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담배를 일주일에 단 한 번 피우더라도 매주 피우고 있으니 흡연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먼저 의사는 자신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비흡연이라고 생각한 것이고 20일 만난 의사는 흡연이라고 판단한 것일 뿐 그들의 판단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를 비롯한 이 세상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즉 일주일에 단 한 번 담배를 피우는 것이 흡연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도 따지고 보면 담배를 정기적으로 피운다는 사실에 입각해 본다면 흡연이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피우지 않다가 일주일에 한 번 피운다는 점에서 중독자가 아니라 여기고 비흡연이라 여기는 것이다. 흡연 유무를 따지는 기준에 중독성은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리라. 즉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담배를 피울 수도, 피우지 않을 수도 있다면 중독이 아니라는 점에서 흡연자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혹시 이글을 읽는 독자들이 필자가 담배를 피우라고 권장한다고 생각할까 두렵다. 전혀 아니다. 나도 금요일의 유혹(?)에서 벗어나 일주일에 단 한 대도 태우지 않는 진정한 비흡연자가 되고 싶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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