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으로 출근하는 워킹맘
02/24/20  

흐느껴 울다가 잠에서 깼다. 악몽이다. 마치 현실같은 꿈이었다. 꿈속에서 아이들이 나왔고 남편이 나왔고 나는 절규하고 있었다. 엉망진창이 된 집에서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왜 나만 이리 힘든 거냐고 소리치며 흐느껴 울었는데…... 꿈이었다.

 

비록 꿈이었고 현실과 많이 달랐지만 아마도 최근 들어 부쩍 고단한 나의 마음이 조금은 반영된 꿈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얼마 전 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리 크지 않은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주위에서는 40대에 경력직 취업이라니 요즘같이 취업이 어려울 때 대단한 일이라며 축하해 줬다. 그래 다 잘 될 거라고 내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어떻게든 될 거다. 나는 애가 넷인 아줌마이고 막내가 아직 미취학 아동이지만 닥치면 해낼 거고 다 잘될 거라고. 그런데 역시 만만치 않았다. 쉴새 없이 원투펀치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물론 미국에 살 때도 나는 늘 워킹맘이었다. 하지만 자영업자와 회사원은 엄연히 다르다. 자영업자는 사업에 대한 모든 부담을 온전히 뒤집어쓰고는 있지만 원한다면 업무 스케줄 조정이 가능하다. 사정상 오전에 일을 못하면 밤에 대신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 학교 행사를 빼먹을 일이 없었다. 자유롭게 점심 약속을 잡을 수 있었고 일하다 잠시 아이들 픽업을 다니기도 했고 몸이 너무 피곤하면 조기 퇴근도 가능했다.

 

그런데 회사원은 다르다. 회사원의 운명이란 마치 하루살이와도 같다. 대기업 직원도 공무원도 아닌 나는 하루 아침에 잘려도 어쩔 도리가 없는 피고용인일 뿐이다.

 

칼퇴근하는 회사라고 했건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정시에 퇴근할 수 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 일을 마치고 거의 반 뛰다시피 겨울 날씨에 땀까지 흘리며 귀가하면 당장이라도 씻고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현관 문을 여는 순간 새로운 업무가 시작된다. 널부러져 있는 집안일들과 망아지처럼 흥분한 아이들을 챙기고 저녁을 차리고 먹이고 치우고. 매일 애 넷이 벗어놓은 빨래는 이틀만 세탁기를 안 돌려도 바구니를 가득 채우고 넘쳐났다. 나는 어느새 집에서도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 워킹맘은 마치 풀타임을 두 개 뛰는 노동자와 다를 것이 없구나. 

 

왜 그렇게 힘든가 생각해봤다. 왜 집에만 들어오면 짜증이 나는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주위 워킹맘들의 의견도 물어봤다. 결국 체력이 문제였다. 사람의 에너지는 총량이 정해져 있다. 내가 이미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나면 에너지가 남아있을 리 없다. 하루 최소 16시간 노동을 한다면 업무 집중도는 떨어지고 성과도 좋게 나올 수 없는게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할 일은 남아있는데 체력은 떨어지고 심지어 몸까지 성치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 컨디션과 상관없이 일은 끊임이 없다. 마치 마감이 코 앞인 프로젝트들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 같다. 그러면 그때부터 엄청난 스트레스가 밀려온다. 아무리 애를 써도 넘지 못하는 벽에 가로막히는 기분이 든다.

 

어제였다. 남편이 휴무라 아이들을 맡아주었고 나는 아침에 혼자 출근 준비만 했는데 평소보다 3-40분 이상 여유 있었다. 그리고 출근길에 콧노래를 흥얼거렸고 책까지 챙겨가서 지하철 안에서는 독서까지 했다. 남편이 집에 있다고 생각하니 회사에서도 왠지 마음이 느긋해서 더욱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퇴근해서 집에 오니 보글보글 김치찌개가 끓고 있었다. 미소가 절로 나왔다. 바로 이거다! 그동안 나는 매일 퇴근 후 집으로 다시 출근하고 있었고 집은 나에게 또 다른 업무의 연장이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나에게는 항상 물심양면 지지해 주시는 양가 부모님이 계시고 남편도 꽤 열린 사람이며 아이들도 아주 망나니는 아니라 나는 꽤 행운아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어렵다. 워킹맘은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하더니만 잘 내려놓는 것도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닌가 보다.

 

곳곳에서 자리를 지키며 버티고 있는 모든 워킹맘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정도면 됐다.

그리고 무사히 지나갈 거라고 믿는다. 나도,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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