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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03/02/20  

나이 차이가 20년 가까이 나는 후배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이제 미국에 온 지 1년 6개월 된 후배의 미국생활 적응이 어렵다는 하소연에 급작스레 만든 자리였다. 다른 후배는 이민 9년차이며 두 사람 모두 스몰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다. 한 후배는 술을 마음껏 마시려고 호텔을 예약했다고 했다.

 

이야기는 '주로 교회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며, 친구나 친지들을 거의 만나지 못하며 산다'로 시작했다. 소주잔을 들면서 첫 마디가 지난해 12월, 송년회 이후 처음 마시는 소주라고 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누구나 이민 초기에 겪었음직한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도 세 가지 일을 하면서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며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시절을 떠올리며 상념에 젖어 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좀 더 심하게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생활 전반에 걸쳐 절제와 절약을 스스로에게 강조하던 때였다. 후배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도 그러하리라.

 

그때 이민 9년차 후배가 물었다. ‘선배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합니까?’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 대답했던가. 오늘도 같은 대답을 할 것인가. 나는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가? 과연 내게 스트레스가 있기는 한 것인가?

 

평생을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살았던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쿠르트 괴델이 떠올랐다. 그는 당시 수학계에서 풀지 못하는 난제들을 풀어냈고, 신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학문적 업적을 높이 산 프린스턴 대학 측의 도움으로 나치가 점령한 오스트리아를 탈출해 미국에 정착할 수 있었으며 1940년부터 1956년까지 괴델은 프린스턴 대학의 고등연구소 멤버로 지냈다. 당시 프린스턴에 와있던 아인슈타인은 퇴근할 때 괴델과 함께 걷기 위해 출근한다며 그와의 친분을 표시했다고 전해진다. 둘의 나이 차이는 아인슈타인이 27세 많았다.

 

아인슈타인이 친분을 과시할 정도로 대 학자였던 괴델은 매우 까다로운 인간으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며, 누군가가 자신을 독극물로 암살하려 한다고 생각해 부인이 해주는 음식만 먹었다. 부인은 괴델에게 매우 헌신적이었지만 병으로 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괴델은 부인이 입원해 있는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아 굶어죽었다. 71세 사망 당시, 키가 180cm인 그의 몸무게는 38kg에 불과했다.

 

괴델에 대조적인 인물로 그리스 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인 ‘그리스인 조르바’가 떠오른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실존했던 인물이며 그를 소재로 여러 편의 영화도 만들어졌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앤소니 퀸이 열연했던 1964년에 나온 버전이다. 소설은 조르바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어쩌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아온 자연인 조르바의 인생 이야기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소설 속의 화자인 나(바실)은 조르바와 지내며 평생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삶을 즐기는 인간으로 바뀌게 된다. 조르바 역의 앤소니 퀸과 바실 역의 앨런 베이츠가 춤추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하루가 다르게 복잡해지는 사회구조와 과도한 업무, 대인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등으로 인하여 우리들 모두 스트레스를 경험하며 살고 있다. 스트레스(stress)라는 말은 원래 ‘팽팽히 조인다’라는 뜻의 라틴어 stringer를 어원으로 한다. 20세기에 이르러 의학계에서 ‘정신적 육체적 균형과 안정을 깨뜨리려고 하는 자극에 대하여 평소의 안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변화에 저항하는 반응’이라고 정의했다.

 

학자들은 스트레스를 경보반응(alarm)→대응·저항반응(resistance)→탈진반응(exhaustion)의 3단계로 나누었다. 스트레스 요인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마지막 단계인 탈진반응에 빠지게 되면, 신체적 정신적 질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스트레스는 긍정적 스트레스(eustress)와 부정적 스트레스(distress)로 나눌 수 있다. 긍정적 스트레스는 당장 부담스럽더라도 적절히 대응하여 자신의 향후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는 것이고, 자신의 대처나 적응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스트레스로 불안이나 우울 등의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경우는 부정적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다. 적절한 스트레스는 생활에 활력을 주고 생산성과 창의력을 높일 수 있다.

 

스트레스 상황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면 결국 질병으로 가게 되지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생산적이고 행복해질 수 있다. 긍정적 스트레스의 경우 생활의 윤활유로 작용하여 자신감을 심어 주고 일의 생산성과 창의력을 높여 줄 수 있다. 스트레스 상황을 좋은 스트레스로 받아들이는 것이 건강, 행복, 성공의 열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자리를 맥도날드로 옮겨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야기는 이어졌다. 9시면 잠자리에 드는 좋지 않은 습관 때문에 하품을 계속하다가 파하기로 했다. 다음날 전해지는 소식에 의하면 두 사람은 호텔에서 새벽 2시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고 한다. 마음 맞는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한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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