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봄이 오면
03/09/20  

코로나19가 우리를 덮친 이후, 말은 쉽지만 실제로 아무렇지 않게 그저 현실에 충실하며 살아가기란 쉽지가 않다. 우리 회사 바로 옆 건물에서 확진자가 줄줄이 발생하고 그들이 내가 타고 다니는 지하철로 이동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며 전염병이 코앞으로 다가왔구나 싶어진다. 확진자와 사망자는 늘어가고 바이러스 공포로 꽁꽁 얼어붙은 경제까지...... 여러 가지 문제와 두려움 앞에서 그 누구도 태연할 수 없다.

 

이런 와중에도 차갑고 메마른 겨울을 이겨내고 봄이 고개를 내민다. 나의 옷차림도 훨씬 가벼워졌다. 요즘 들어 출근길 공기가 그리 차갑지 않다. 아니 여전히 차갑지만 볕이 다르다고 해야할까 ...... 봄이 다가온다. 여느 3월 같았으면 봄이 온다며 잔뜩 설레어었 것이다. 꽃구경, 나들이는 어디로 가나 일찌감치 계획부터 세우려 했을 것이다.

 

이렇게 봄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바이러스 공포에 집과 회사만 왔다갔다하고 아이들은 아예 일주일째 집안에만 꽁꽁 틀어박혀 있으니 봄이 다가 오는 것을 눈치조차 못 채고 있었다. 자연은 봄을 향해 가는데 생명을 위협하는 불안감은 사람들을 한없이 움추러들게 한다. 여전히 깊고 차가운 계절에 갇혀 벗어날 줄 모른다. 이렇게 계절의 흐름마저 잊게 만드는 바이러스의 창궐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늘어난 방학 덕분에 하루 종일 시간이 남아도는 아이들에게 코로나19 주제로 글짓기나 그림 그리기를 하라고 했다. 우리 딸의 그림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감옥 철창에 갇힌 자기 자신을 그려 넣고 “코로나 때문에 집이 감옥이 되었다”라고 썼는데 솔직한 아이의 표현이 제법이다 싶으면서도 씁쓸했다.

 

하지만 전쟁 속에서도, 끊임없는 재난 가운데도 인류 역사는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다. 이겨내지 못할 시련은 없다 하지 않았는가?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코로나도 여느 질병처럼 훅 불고 사라질 수 있을까? 해마다 독감으로 몇만 명이 죽어가고 있지만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왔듯이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와 공존하여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3월이다. 코로나19 가 여전히 극성을 부리지만 결국 봄은 올 것이다. 그리고 이달 말이면 언제나처럼 벚꽃이 만발할 것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아름다운 기적의 봄을 봄이라 느끼지 못한다면 이보다 슬픈 일이 어디 있을까? 부디 꽃 피는 봄이 오면, 식구들과 손에 손잡고 언제나처럼 꽃구경 갈 수 있기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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