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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 (The Love Letter c. 1770)
11/16/20  

쟝 오노레 프라고나르 (Jean Honore Fragonard 1732-1806)

(캔버스에 유채. 83.2 cm x 67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서양 미술사를 둘러 보면 실력에 비해 평가 절하 되어 있는 화가가 꽤 있다. 쟝 오노레 프라고나르가 그 중 하나다. 18세기 프랑스 로코코 화풍을 대표하는 그의 솜사탕 같은 그림은 섬세한 솜씨로 관객을 놀라게 하고, 몽롱한 분위기에 취하게 하며, 야릇한 상상을 도발하는 이미지로 유혹한다.

 

이 그림은 '러브레터'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그림의 주제는 인물이 아니라 사건이다. 곱게 화장을 하고 그 당시 유행하던 최신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인이 창가에 있는 책상 앞에 앉아 작은 꽃다발과 편지를 손에 들고 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본다. 편지를 가지고 온 사람을 보는 것인지, 편지를 읽고 모종의 생각을 하며 그림의 정면 쪽으로 시선을 돌린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여인처럼 곱살스럽게 생긴 강아지가 의자에 앉아 역시 같은 쪽을 보고 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화면의 중심이 되는 여인의 모습을 빼고는 미완성인 듯한 느낌이 든다. 왼쪽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환한 빛은 넓은 붓질로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커튼이나 드레스의 주름들은 재빠른 붓질로 스케치하듯 묘사되어 있다. 색칠도 하다만 듯 하나의 톤으로 처리되거나 생략된 부분이 많다. 러브레터를 받고 막 반응을 보이는 여인의 동작을 순간적으로 가볍게 포착한 스냅샷 같은 그림이다.

 

로코코 화풍 또한 이렇게 가볍고 순간적이었다. 17세기 바로크와 19세기 신고전주의 사이에 잠시 피어났던 로코코 화풍은 당시 프랑스 귀족사회의 취향을 반영하며 발달한 스타일이었다. 화려하고 섬세하며, 때로는 유치하고 조악하게 느껴질 정도로 장식적이었다. 현세적 인간의 삶을 찬미하던 로코코 양식은 계몽주의의 등장과 함께 신고전주의에게 길을 내어주게 된다. 프라고나르의 그림 또한 로코코의 쇠퇴와 함께 비사실적이고 퇴폐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장식품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 그림을 들여다 보면 빈틈없는 구도, 밝고 경쾌한 색채, 세밀한 디테일까지 그림의 모든 것을 장악한 대 화가의 연륜을 느낄 수 있다. 달콤하고 가벼우면 어떤가. 이 세상에 정말로 좋은 것은 모두 가볍고 부드럽다. 물 흐르듯 막힌 곳 없이 유려한 그림. 프라고나르를 재평가해야한다는 확신이 드는 그림이다.

 

김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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