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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떼기는 가라!(루가 18,9-14)
11/16/20  

사랑의 심리적인 상태나 또는 그 사람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인간은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말 중에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마음 속은 알 수가 없다‘는 표현이 있듯이, 사람의 속을 파악한다는 사실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떤 관찰이나 실험 또는 현상의 통계에 의하여, 어느 정도 사람의 심성이나 심리적인 상태가 파악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아직도 사람을 알고자 하는 시도는 사람을 투명하게 볼 수 있다는 가능성과는 거리가 먼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을 볼 때 저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옷을 잘 입고 행동이 점잖은 사람을 대하는 것과, 옷을 남루하게 입은 사람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같게 나타나는 것은 매우 드물게 관찰되고 있다.

 

사람은 자신이 좀더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를 원하고, 인정받으려는 심리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심리적 경향은 실제적으로 옷을 좋게 입는다거나, 또는 상표가 있는 옷을 선호하게 만들며, 자동차 도 고급스러운 차종을 선택하도록 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은 이러한 인간의 겉모습과 그 사람의 소유물에 기준하여 우선 사람을 평가하게 된다.

 

어떤 분이 이야기하는 중에, ‘얻어먹는 사람일수록 옷을 깨끗하고, 고급스럽게 입어야 한다‘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 얻어먹는다는 사실에 있어서는 거지나 옷을 잘입은 사람이나 같지만, 하나는 멸시를 받으면서 얻어먹고, 한 사람은 인정을 받으면서 얻어먹게 되므로, 이왕이면 자존심을 세우고 체면이 좀 덜 상하는 쪽이 낫다는 의미를, 이 말은 함축하고 있다.

 

인간은 어떤 면에서 보면 이러한 겉 껍데기에 해당하는 요소에 의해 많이 좌우되고 있다. 현실적인 삶에서 보면 이러한 외적인 요소에 일생을 허비하면서 삶을 마치는 존재가 곧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도록 한다.

 

겉모습만 보고 평가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두 사람, 즉 바리사이파 사람과 세리는 인간 사회에 통용되는 이러한 판단과 삶의 방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나 하는 사실을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선 바리사이파 사람은 사회에서 존경받고 남에 인정받는 삶을 살아나가는 전형적인 타입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비해 세리는, 이름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경멸과 업신여김을 당하며 사는, 그야말로 사회에서 가장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전형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이 두 사람이 성전에서 기도한 내용을 보아서도 입증이 되고 있다. 바리사이파 사람은 그야말로 잘난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을 자신의 기도로 삼고 있고, 세리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알고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기도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세리보다 인간적으로 잘못 살았다거나 또는 세리가 오히려 잘 살았다고 하는 인간적인 평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겸손해야 실체 파악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들의 평판이나 판단은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관계성에 놓여있는 당사자의 태도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리사이파 사람은 인간적으로 볼 때 완벽한 삶을 살고 있고,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에 속할 것이다. 왜냐하면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성전에서 기도하고 난 후의 정황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진정한 겸손은 인간의 실존을 깨닫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의 실체를 똑바로 보았을 때에 인간은 사회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하느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고, 이러한 하느님과의 관계 정립은 당사자와 하느님 사이에만 성립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김신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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