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위에 블루 (White over Blue c. 1967)
07/16/18  

엘스워드 켈리 (Ellsworth Kelly 1923 – 2015)

(캔버스에 아크릴릭  289.6 cmx 870 cm x 45.7 cm패사디나 노턴 사이먼 미술관)

 

 

 미국 화가 엘스워드 켈리는 미니멀리즘 화가였다. 1950년대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가 한창일 때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켈리는 마티스와 브랑쿠지 등의 작품에서 영향 받아 자신의 작품세계를 정립하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 왔다.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잭슨 폴락, 마크 로스코, 윌렘 드 쿠닝 등의 그림이 소용돌이 치는 감정을 휘몰아치는 작업 과정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면, 켈리의 그림은 간결하고 명료한 색채와 선으로 자신이 본 대상의 본질을 집약적으로 표현해 보여주었다.

 

켈리의 대표작 중 하나인 ‘화이트 위에 블루’는 패사디나에 있는 노턴 사이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을 보면 ‘이것도 그림이라고 해야 하나?’ 라고 반문할 정도로 너무나 단순하고 밋밋하다. 그도 그럴 것이 각각 가로 4.5 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캔버스 두 개가 나란히 벽에 붙어 있는데, 하나는 흰 색이고 다른 하나는 파란색이라는 너무나 간단한 공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크릴 물감을 썼기 때문에 그림의 질감도 전혀 느낄 수 없고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그 위에 무엇을 그려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텅 비어 있다.

 

노턴 사이먼 미술관을 자주 다니면서 이 그림을 계속 보았는데 영 메마르게만 느껴졌던  그림이 어느 날부터 마음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면 이 두 개의 캔버스가 다른 위치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흰 색 캔버스가 파란 색 캔버스보다 약간 앞으로 돌출하도록 배치 되어 있다. 이 간단한 위치의 차이는 미묘한 울림을 자아낸다. 텅 빈  캔버스가 담고 있는 색채, 그리고 캔버스의 모양과 위치가 그려내고 있는 심플한 직선이 비로소 시각적인 효과를 나타내도록 작용하기 때문이다.

 

엘스워드 켈리는 자신이 ‘내면의 감정’ 대신 ‘자신을 둘러 싼 환경’을 보고 그려 낸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 그림을 해석한다면 이 화이트와 블루는 어쩌면 켈리가 본 이 세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모든 것의 가지를 쳐 내고, 깎아내고, 생략하고, 정화해서 마침내 본질만 남겨 놓은 ‘사물의 정수’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림 앞에 서면  그 막막한 화면이 자연의 현상과 모습인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낮과 밤이 교차하고, 여름과 겨울이 지나가며, 흰 눈과 찬 비가 바람 속에 내리는 것처럼 맑고, 차갑고, 장엄할 정도로 명징하다.

 

김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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