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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노르웨이 여행기_45. 테오도르 키텔센
01/11/21  

  뭉크 전시관을 나온 나는 또 하나 흥미로운 전시실에 들리게 되었다. ‘노르웨이 미술의 목신’ 이라 불린다는 테오도르 키텔센(Theodor Kittelsen)의 전시실. 동화와 우화, 그리고 사회 풍자 장르 등에 걸쳐 방대한 작품을 남긴 또 한 명의 노르웨이 국민 화가였다. 그의 그림들은 일러스트레이션에 가까운 흑백 작품들이었는데 노르웨이 숲에 산다는 괴물 트롤, 물의 요정 녹켄 등 동화책 그림같은 이미지들이 넘쳐났다.

 

  키텔센의 트롤은 괴물이지만 어쩐지 어리숙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져서 친근감이 들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신해 사람들을 물로 유인한다는 요정 녹켄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뿔 달린 하얀 유니콘이다. 달밤에 물에서 나와 유니콘으로 변신해 그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들을 유인한다고 한다. 작품들 옆에 붙어 있는 설명에 의하면 키텔센의 트롤이나 녹켄은 길들여지지 않고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한없이 서정적인 노르웨이의 자연에 대한 은유라고 한다.

 

  ‘노르웨이 미술의 황금기’를 살면서 몽환적인 비전으로 조국의 자연을 표현한 테오도르 키텔센의 작품들에 흠뻑 빠져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의 전시실에 머물렀다. 언젠가 어렸을 때 동화책에서 보았던 것 같은 정다운 그림들 같아서 향수에 젖었고, 폭설이 쏟아지고 안개가 모든 것을 덮은 작품 속 겨울 노르웨이 풍경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뭉크 전시를 본 것도 좋았지만 테오도르 키텔센이라는 화가를 발견한 것이 베르겐 코드 미술관에서의 또 하나 큰 수확이었다.

 

  떠나기 아쉬웠던 코드 3 미술관을 나왔을 때는 또 밖에 가랑비가 뿌리고 있었다. 릴르 룽게가쉬바네 호수의 잔잔한 물위에도 가만가만 내리고 있다. 우산을 쓸 필요는 없을 정도의 비라 나는 그대로 밖으로 나섰다가 호숫가의 정경이 너무나 그림 같아 호숫가 벤치에 잠깐 앉았다. 소박하고 아담한 목조 건물들은 갖가지 예쁜 색깔로 칠해져 그림물감 팔레트 같았고 호수의 맑은 물은 그야말로 거울처럼 이 모든 것을 곱게 비쳐내고 있었다. 베르겐을 생각하면 꼭 기억에 떠오를 모습이 될 것이다.

 

  오던 길을 돌아간다. 그동안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사람들이 몰려 들어 대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상점들이 준비를 다 마치고 손님들을 맞고 있었으며 겨울 무장을 단단히 한 사람들이 한창 크리스마스 쇼핑에 열중하고 있었다. 호숫가 옆에는 회전식 대관람차 페리스 윌이 천천히 돌아가고 타려는 사람들이 줄을 잔뜩 서 있었는데 아까 베네치아 회전목마까지 돌아가면 완전히 축제 분위기가 될 것이다.

 

  크리스마스 마켓을 지나가면서 상점마다 구경을 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다른 일정을 먼저 소화하고 저녁에 와 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어 빠르게 지나쳤다. 하지만 한쪽 구석에 돼지통구이를 하고 있는 부스가 나와서 발을 멈추어야 했다. 숯불이 활활 타오르는 화덕에 큰 돼지 한 마리가 통째로 쇠꼬치에 끼어져 빙빙 돌아가고 있는 장면을 어떻게 지나칠 수 있으랴. 화덕 위에는 돼지 간판이 올려져 있고 그 위에 ‘풀드 포크(Pulled Pork)’ 라고 써 있는 것을 보니 통째로 구워서 잘게 찢을 모양이었다. 노르웨이에서도 이런 식으로 돼지고기를 먹는구나 싶어 매우 신기했다. 통돼지는 이제 막 화덕에 올라간 것 같았고 크리스마스 마켓도 이제 막 시작하고 있으니 오늘 밤새도록 함께 돌아갈 것이다. 나는 나중에 꼭 다시 들러 통돼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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