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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율법의 완성 (마태 5,17-37)
01/19/21  

오늘 1독서의 저자는 기원 전 2세기의 '예수 벤 시락'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경험을 깊이 쌓았으며 또한 율법에 대한 연구와 묵상이 많았기 때문에 이 율법이야말로 당대의 최고 지혜인 희랍의 철학이나 다른 어느 사상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알고 유대인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집회서를 썼던 것입니다.

 

당시 유대 나라는 알렉산더 대왕의 침략 이후로 계속해서 그리 의 지배하에서 박해를 받아 왔습니다. 백성들은 실의에 빠졌으며 종교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 세상에서 활개치고 있었으며, 반대로 선하게 사는 자들은 기가 죽어 힘을 못 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니 하느님 두려운 줄 모르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여기서 벤 시락이 신앙을 통해서 용기와 힘을 백성들에게 불어넣어 줍니다. 즉, 유대인들이 고통받는 것은 하느님께 불충실했기 때문이니, 하느님께만 충실하면 기죽지 않고 다시 일어선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제시하는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율법을 존경하면 복과 은혜를 받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벌받아 멸망할 것이니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느님의 법이요, 하느님의 법은 이 세상의 어떤 사상이 나 지혜보다도 월등하게 우수합니다. 그래서, 율법에 대한 유대인들 의 자부심은 대단하며 그들 나름대로는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학자들은 율법을 더 연구하여 하느님 말씀의 내용을 깊이 찾았으며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오로지 그 율법에 따라 충실하게 살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문제가 생깁니다. 뭐냐 하면, 유대인들이 수백 년 동안 모세의 율법을 연구하며 실천하여 왔지만, 도대체 그 율법의 핵심이 무엇인 줄을 몰랐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가지고 오히려 사람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판단했으며,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얹어 주고는 심지어는 하느님을 따라 가지도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도 지키지 못하면서 백성들까지도 못 지키도록 얽어 매 놓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모순을 지적한 것이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모순과 위선을 신랄하게 공격하셨습니다. 그러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걸고 넘어지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셨으며, 음식을 드시기 전에 손을 씻지도 않으셨고, 나병환자를 가까이 하셨으며, 그리고 율법에 저촉되는 여러 가지 일을 서슴없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했을 때 예수님의 그와 같은 행적은 율법을 무시하는 듯이 보였으며 또 율법을 없애러 온 줄로 착각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나는 율법을 없애거나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율법은 예수님 자신이시며, 또 모든 율법은 예수님 안에서만이 확실하게 밝혀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면서도 율법의 형식만 가지고 왈가왈부한 격이니, 말하자면 종교 자체도 요지경이었던 것입니다.

 

신자들 사이에도 보면, 누가 밉다고 서로 따돌리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믿는 사람들인데, 좀 허물이 있어도 이해하면서 덮어 주고 도와 줘야 하는데 오히려 더 지독하게 외면하면서 배척합니다. 열심하고 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더 그럽니다.

 

중요한 것은 율법의 핵심은 사랑이기 때문에 핵심을 외면하면 그 자체로 율법을 깨뜨리는 것이요 하느님을 모독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아들을 희생 제물로 우리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참 사랑이며 율법의 핵심입니다.

 

우리도 율법을 위해서 죽읍시다. 율법을 빙자하여 남을 무시하거나 심판하지 말고, 율법을 넘어가는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도록 합 시다. 이것이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의 내용입니다.

 

강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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