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산타 트리니타 다리(The Ponte Santa Trinita)를 지나 숙소로
07/10/18  

택시를 타고 계속 달리는 동안 허름하고 어수선한 변두리 풍경이 조금씩 정리되는 것 같더니 갑자기 눈 앞에 웅장한 중세식 건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시간 여행자가 되어 일 순간에 중세 이탈리아로 돌아간 듯한 느낌! 우리는 드디어 피렌체의 중심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진으로 늘 보아 왔던 풍경이지만 실제로 그 풍경이 눈 앞에 나타나니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 모든 중세 건물들이 수백 년 동안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을까?

 

그동안 사람들이 많아져서 택시는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창문에 코를 대고 정신없이 밖을 보고 있는 우리에게 택시기사 아저씨가 또 이탈리아 어로 소리친다. “알로라!......산타 트리니타……단테……베아트리체……!”  익숙한 이름들이 단편적으로 귀에 들렸다. 택시가 천천히 다리 하나를 지나 좌회전을 하려고 하는데 바로 그 다리가 폰테 산타 트리니타였다! 단테가 그 곳에서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를 만나 첫 눈에 사랑에 빠졌다는 바로 그 다리이다! 그러나 택시는 이미 좌회전을 해 버려 다리는 지나가 버렸다. 짐을 풀고 난 후에 당장 달려가 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숙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음. 얼마나 오래 걸리나요? 일커.’ 에어비앤비 주인이다. 비행기 도착 시간과 택시 소요 시간을 대충 계산해 시간을 잡았더니 아까부터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나 보다. “콴토 티엠 (Quanto Tiempo)?” 급하니까 스패니쉬 (Spanish)가 튀어 나왔다. “알로라(Allora)! 시아모 퀴(Siamo Qui)!” 운전기사는 알아 들었다는 듯 또 이탈리아어로 외치며 눈 앞에 나타난 굴다리를 돌았다. 택시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더니 속도를 늦추었다. 운전기사가 “트레 바르바도리(3 Barbadori)! 퀴(Qui)!”라고 말하는데 왼쪽 앞에 자그만 체구의 아저씨가 택시를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우리 에어비앤비 주인 일커(Ilker)다.

 

우리를 내려주고 택시 기사는 또 바쁜 듯이 급하게 떠나갔다. 우리는 일커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의 안내로 아파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말이 아파트 건물이지 사실은 조그만 주상복합 건물이다. 입구로 들어가니 계단이 나타났다. 옆에 또 조그만 엘리베이터가 나왔는데 한 사람도 겨우 들어갈까 말까 보이는 초미니 사이즈였다. 일커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이 빠르다고 하면서 우리 짐을 들고 앞서 올라갔다.

 

미국에서 에어비앤비를 예약할 때 아파트 전체를 빌려주는 유닛으로 계약했다. 왜냐하면 다 큰 딸을 데리고 화장실에서 낯선 사람과 마주친다거나 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일커의 아파트는 사진으로 봤을 때 아주 아늑하고 쾌적해 보였고 무엇보다도 로케이션이 너무 좋다는 평가가 있어서 선택했다. 계단을 올라가 우리는 삼층 일커의 아파트로 들어갔다. 사진으로 본 것보다는 작았지만 침실, 거실, 화장실, 주방 등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침실과 거실은 전면이 유리창이라 밖을 환히 내다 볼 수 있었다. 발코니에는 비둘기가 두 마리 보이고 조금 열어 놓은 유리창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하얀 레이스 커튼이 살랑거렸다. 꼭 60년대 이탈리아 영화 속에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소피아 로렌을 만나러 오는 그런 아파트 같았다.

 

모로코 혹은 알제리 사람같이 생긴 일커는 떠듬거리는 영어로 이것저것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고 옛날 동화책에 나오는 황금 열쇠같이 생긴 커다랗고 둥그런 열쇠를 건네 준 다음 떠났다. 우리는 여행 가방을 거실에 다 몰아 넣고 그 방을 드레싱 룸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가방을 열고 짐을 풀어야 하는데 갑자기 피곤이 밀려 왔다. 벌써 오후 5시가 지나고 있었다.

 

R에게 엄마는 침대에 좀 누워야겠으니 자기 짐을 정리해 보라고 말하고 침실에 들어 갔다. 편안한 퀸 사이즈 침대에 누우니 몸이 땅 밑으로 푹 꺼지는 듯 늘어졌다. 아침부터 쉴 새 없이 우버⇒기차⇒셔틀버스⇒비행기⇒택시 순으로 움직였으니 피곤한 것이 당연했다. ‘오늘은 그냥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내일 일정을 위해 일찍 자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거실에서 R이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엄마!” “응. 왜?” “엄마가 내 지갑 가지고 있어?”

 

뭐라고? 내가 왜 네 지갑을 가지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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