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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노르웨이 여행기_51. 베르겐 크리스마스 마켓
02/22/21  

깜깜한 밤 거리로 다시 나섰다. 그동안 비는 그치고 흠뻑 젖은 세상에 차가운 겨울 바람만 몰아치고 있었다.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해 기운이 없어 나는 추위에 몸을 움츠리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브뤼겐 지구를 휘청휘청 걸어 나오는데 마음이 한없이 처량해지면서 눈물이 글썽해졌다. 저녁식사 후에 크리스마켓에 가 보려 했지만 의욕이 다 사라져 그냥 호텔로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의기소침해서 코트 깃에 얼굴을 푹 묻고 걸어가는데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우산을 펼쳐 들고 계속 걸어갔다. 비가 우산 위에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빗소리를 들으며 조금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점점 풀어졌다. 우산에 내리는 빗소리가 마치 ‘괜찮아! 괜찮아!’처럼 들린다.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번지다가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바보야, 너무 재미있었잖아!

 

  그래, 정말 훌륭한 저녁 식사였다! 베르겐에 혼자 여행 와서 평생 한 번 먹어 볼까 말까 한 정통 노르웨이 ‘류트피스크’를 맛보았으니 이보다 더 훌륭할 수 있는가? 베르겐에 와서 먹었던 모든 음식을 다 합친 것보다 더 값진 음식이었다! 외국 사람이 한국에 와서 삭힌 홍어를 먹었다면 ‘한국 음식 좀 먹어 봤군!’ 할 터인데, 나는 그야말로 ‘노르웨이 음식 좀 먹어 봤군!’ 하고 큰소리 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크리스마스 마켓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빨리 가서 구경도 실컷 하고 뭔가 맛있는 것이 있으면 사 먹을 생각에 걸음이 더 빨라졌다.

 

  밤에 도착한 크리스마스 마켓은 낮에 보았던 그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다. 입구에는 낮에 불이 꺼져 있던 베네치아 회전목마가 환하게 불을 밝히고 빙글빙글 돌아 가고 있었다. 회전목마를 잠시 구경하다 마켓쪽으로 더 들어 갔다. 언제 세웠는지 ‘베르겐 크리스마스 마켓(Bergen Julemarked)’ 네온사인이 깜깜한 베르겐 하늘을 밝히고 있다. 뒤에는 페리스 휠이 돌아가고 있고 핑크빛으로 조명을 밝힌 천막 상점들이 한창 손님을 맞고 있었다. 어디서 몰려 왔는지 사람들이 가득차 쇼핑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도 노르웨이 크리스마스 마켓 구경에 흠뻑 빠져 들었다. 코펜하겐에서 본 덴마크 크리스마켓이 아기자기하고 고급스러우며 예쁜 분위기였다면, 베르겐의 노르웨이 크리스마스 마켓은 어딘지 우직하며 실용적인 분위기이다. 상품들도 보기 좋게 진열한 것이 아니라 그냥 푸짐하게 쌓아놓은 스타일이었다. 손님들도 멋지게 차려 입은 코펜하겐 사람들과 많이 달라 보인다. 그냥 두툼하고 따뜻하게 걸쳐 입고 구경 나온 푸근한 동네 사람들 같았다. 나는 천막 상점들을 구석구석 돌면서 뭐가 있나 살펴 보았다.

 

  여기는 크리스마스 장식품 같은 것보다 향토 식품 같은 것들이 훨씬 많다. 햄, 소시지 등 훈제 육류와 연어와 청어, 고등어 등 훈제 생선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먹음직한 훈제 생선들을 구경하다가 옆 상점에서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뭔가 동물의 뼈처럼 생긴 것이 비닐 봉지에 포장되어 수북이 쌓여 있다. 봉지에는 ‘Pinnekjott’ 라고 써 있었다. 이게 뭔가? 상점 주인에게 물어보니 소금에 절이고 훈제해 말린 양 갈비뼈인데 노르웨이에서 크리스마스에 먹는 특별 요리의 재료라고 한다. 장시간 물에 불려 조리해 소시지, 감자, 맥주, 그리고 아쿠아비트와 함께 먹는다고. 아, 또 물에 불려 조리하는 음식이다. 혹독한 기후를 가진 노르웨이에서는 옛날부터 이렇게 소금에 절이고 말려서 보관했다 물에 불려 조리해 먹는 음식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음식을 크리스마스 특별 음식으로 먹는가 보다. 하얗게 말린 양 갈비뼈를 들여다 보고 있자니 ‘류트피스크’를 먹고 놀랐던 마음이 어느덧 정답고 훈훈한 노르웨이 크리스마스 마켓 분위기에 젖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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