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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피렌체 여행기_ 지갑이 없어졌다
07/16/18  

지갑을 찾는 아이의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른 일어나 거실로 갔다. R은 검은 가죽 백팩을 열어 놓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엄마, 지갑이 없네..…. 혹시 엄마가 가지고 있나 하고’ 내가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내가 마지막으로 R의 지갑을 본 것은 비행기 안에서였다. 조그만 크림 색 가죽 지갑인데 R은 미국 운전 면허증, 학생 신분증, 크레디트카드, 런던 오이스터카드 등 카드 몇 개만 넣어서 가지고 다니는 게 전부였고 현금은 거의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런던에서 떠날 때 혹시 몰라서 유로 지폐 몇 장을 주었는데 그걸 그 조그만 지갑에 넣고 있길래 마음이 안 놓여서 피렌체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도로 받아 내 지갑에 챙겨 넣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R은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지갑을 백팩 뒤에 달린 조그만 주머니에 넣었고 나는 그것이 마음에 걸려 소매치기 조심하라고 한 것인데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기억을 뒤로 돌려 곰곰 생각해 보면 소매치기 당할 만한 시점은 공항 로비밖에 없었다. 그 전에는 계속 백팩을 여행 가방 위에 올려 놓고 밀고 갔으니 코 앞에 있는 물건에 손을 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로비에 나와서 막 백팩을 등에 짊어 지고 공항의 어수선함을 둘러 보며 잠깐 서 있었던 그 순간이었을 것 같았다. 내가 R에게 ‘소매치기 조심 해야겠지?’ 하고 말하던 바로 그 순간 이었을 수도 있다. ‘현금이며 패스포트 등을 모두 내가 챙겨 넣고 보관한 것이 천만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R의 얼굴을 살펴 보았다.

 

소매치기 당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은 아이의 얼굴은 창백하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마음 속에는 후회가 소용돌이 치고 있지만 엄마에게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 입술을 꼭 다물고 눈썹을 잔뜩 찌푸리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가면처럼 부자연스러운 표정을 할 때는 R의 내면에서 분노가 일어나고 있는 조짐이다. 거기에 대고 “거 봐라, 엄마가 조심하라고 했지!” 따위의 잔소리를 하는 것은 폭탄에 불을 붙이는 것이 되고 만다.

 

미국 운전 면허증과 학생 신분증, 오이스터카드는 잃어 버린 것으로 포기했지만 크레디트카드는 조치를 취해야 했다. 미국 크레디트카드 회사에 전화해서 도난을 신고해야 한다. 불행히도 우리 핸드폰에 갈아 넣은 영국 SIM카드는 유럽 전역에서는 사용할 수 있지만 미국으로 통화는 불가능 했다. ‘나가자. 국제전화 할 수 있는 콜센터 같은 것을 찾아 보자’

 

우리는 즉시 밖으로 나갔다. 이미 날이 저물어 어두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무조건 골목을 나가 시내로 들어가기로 했다. 굴다리 밑을 지나 골목을 나가니 바로 거기가 폰테베키오(Ponte Vecchio)가 시작하는 지점이었다! 피렌체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베키오 다리. 우리 숙소가 너무나 편리한 위치라고 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무조건 앞으로 걸어 나갔다. 피렌체에 도착한 첫 날 폰테베키오를 허둥지둥 건너가는 우리의 모습은 전혀 우리가 상상했던 그림이 아니었다.

 

구글링을 해서 찾아간 모바일폰센터는 막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사정을 얘기하니 자기네는 도와 줄 수 없고, 저기 가면 국제전화 할 수 있는 콜센터가 있다고 대강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구글에 뜨지도 않는 알 수 없는 위치였다. 우리는 피렌체의 골목을 돌며 콜센터를 찾아갔다. 한  골목을 지나는데 갑자기 건물 사이로 거대한 성당이 나타났다. 두오모(Duomo) 였다!  산타 마리아 델피오레 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피렌체대성당으로도 불리는 ‘꽃의 성 마리아’ 성당이 시야를 가로 막고 있었다. 평생 꿈꿔 왔던 그 모습을 처음으로 보는데 두오모 광장에서 정면으로 제대로 못 보고 골목을 헤매며 겨우 건물 사이로 조금 보이는 것을 올려다 보고 있자니 갑자기 억울한 생각에 눈물이 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 골목을 헤매다 건물 사이로 올려다 본 피렌체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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