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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낡은 틀로부터 해방 (벧전 1:13~19)
06/14/21  

구원의 문제는 인간이면 누구나 갖게 되는 궁극적인 생의 문제인 동시에 종교에서 다루는 근본적인 주제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도 역시 구원의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특별히 신약성서 베드로전서에서 강조 되고 있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재에 이르는 해방 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된 것이니라”(18-19)



우리들의 삶에는 우리들이 물려받았거나, 만들어낸 존재하지 않는 거짓된 환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를 두렵게, 약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어리석은 신념의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고, 돈키호테와 같은 영웅으로 연기하게 하기도 합니다.
인류역사에서 고대 그리스나 로마시대 사람들은 실재와는 거리가 먼 공허한 삶에 그들의 삶을 소진시켜 갔습니다. 공허한 삶은 여러 형태의 거짓된 이념, 신앙으로 만들어져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파멸시킵니다. 이러한 거짓되고, 허구적인 것들은 과거의 시대에서 그 거짓이 분명히 드러나고,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멸되지 않고 계속해서 계승되어 오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러한 거짓된 것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은 내적 자유를 누리며 세상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서, 주위 사람들의 잘못된 삶의 틀과 환상들로부터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상들과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틀로 자신의 삶을 형성해 갑니다. 그들은 자신들은 자유롭게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조상이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무의식의 틀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상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낡은 틀로 인해 우리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헛되고 공허한 삶의 양식에 따라 정해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러한 수많은 부정적인 삶의 틀은 여지없이 자기 파괴적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를 적대시하고 우리에게서 내적 자유를 앗아가며 노예화 시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로 인해 항상 같은 함정에 빠집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삶의 척도로 삼고 있는 것이 얼마나 공허하고 헛된 것인지 꿰뚫어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공허하고 자기 파괴적인 틀에서 우리가 어떻게 빠져 나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첫 번째 걸음은 이 틀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를 고통스럽게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그 틀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식하는 것은 최소한 우리에게 어느 정도 그러한 것들로부터 거리감을 갖게 합니다.
두 번째 걸음은 그러한 틀을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내 삶 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틀을 어느 날 갑자기 떼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러한 틀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남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우리 자신 안에 그러한 틀을 발견할 때 놀라거나 적대시 하지 않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를 받아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조상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낡은 삶의 틀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러한 틀을 발견 하게 되고, 그러한 틀과 화해 가운데서 거리감을 두고, 그것을 따라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진정한 나 자신의 삶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주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새로운 삶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낡은 틀에서 해방시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낡은 틀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새로운 삶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낡은 틀은 새것을 새것이 되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의 가정은 자녀들에게 삶의 낡은 틀을 형성시켜주는 공동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가정은 하나님께서 세워 가시는 구속받은 공동체가 되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낡은 틀에서 구원받아 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은 가정에서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배워가야 합니다.

임영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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